요즘 같아서는 도대체 안전한 곳이 어디 있나 싶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많은 사람이 숨지거나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이번 주에만 해도 26일 고양시외버스종합터미널 화재로 8명이 숨지고 70명이 다친데 이어 28일 전남 장성의 요양병원 화재로 21명이 숨졌고 서울지하철 3호선에서는 방화로 자칫하면 큰 참사가 날 뻔한 아찔한 일도 벌어졌다. 이달 초 수백명이 다친 서울지하철 2호선 열차 추돌사고 등 앞서 발생한 크고 작은 사고는 더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이렇게는 불안해서 못 살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더욱이 이런 사고에서 적나라하게 민낯을 드러낸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은 탄식을 더 깊게 한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많은 요양병원 참사만 해도 단 6분간의 화재에 그 많은 사람이 연기에 질식돼 숨질 정도로 안전에 무방비임을 드러냈다. 대규모 다중이용시설인 고양터미널 화재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우리 사회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사고들 앞에 자책에 또 자책을 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래도 이런 사고에 직면해 자신의 온몸을 던져 생명을 구하는 의로운 사람들이 있어 안타까움 속에 희망을 보게 된다. 절박한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돌보기보다 주변을 먼저 챙기며 위험 속에 뛰어든 이들 앞에는 머리가 숙여진다. 고양터미널 화재 당시 KD운송그룹 고양권 운송지사장 이강수(50)씨는 화재 직후 대피했다가 직원이 탈출하지 못한 것을 알고 구하려고 다시 건물에 들어갔다가 변을 당했다. 위험을 알면서도 직원을 대피시키려다가 자신도 연기에 질식해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요양병원 화재에서는 야간 근무를 하던 간호조무사 김모(53·여)씨가 불을 끄려다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김씨는 환자들 외에 유일하게 숨진 사람이다. 한밤에 홀로 위험을 무릅쓴 채 환자들을 구하려 진화에 나섰다가 쓰러진 그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요양병원 화재 구조에 나선 소방관 홍모씨의 사연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이 병원에는 그의 아버지도 입원중이었다. 그러나 임무를 수행하느라 아버지만 따로 먼저 구할 수 없었던 그가 묵묵히 임무를 마치고 찾아나섰을 때는 아버지는 이미 숨진 뒤였다고 한다. 서울지하철 3호선 방화는 마침 출장을 가느라 열차에 있던 서울메트로 역무원 권순중(46)씨가 몸을 던져 막지 않았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방화범이 두차례나 다시 불을 붙이기도 했지만 권씨는 사력을 다해 진화를 완료했고 승객 몇명도 옆 칸의 소화기를 가져다주며 진화를 도왔다고 한다. 잘못했으면 192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같은 엄청난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를 막은 권씨와 힘을 보탠 시민들에게는 우리 사회가 수없이 감사를 표해도 충분하지 않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다른 생명을 구하느라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의인들이 우리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세월호 사무장 양대홍씨, 승무원 박지영, 김기웅, 정현선씨 등은 승객들을 한명이라도 더 대피시키려 애쓰다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 단원고 교사인 남윤철, 최혜정씨는 학생들을 끝까지 대피시키다 미처 구하지 못한 제자들 곁에서 생을 마쳤고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주고 숨진 정차웅군을 비롯한 많은 학생도 그 극한의 상황에서 친구와 선생님을 챙겼다. 우리는 이들이 목숨 대신 세상에 소중하게 남기고 간 숭고함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위험에 맞서 자신을 던지는 이들이 더는 나오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사회를 꼭 만드는 것이 이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최소한의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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