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상이 끝나도록 상주를 등에 태우고 다녔던 호랑이는 상주가 숨지자 죽음을 택한 호돌이"

88년 우리나라의 올림픽 마스코트는 호랑이었다. 호랑이는 우리민족에게 있어 어떤 존재일까? 옛날 한국 호랑이가 존재하던 때 사람들은 호랑이를 아주 두려워 하였다 한다.

우는 아이도 뚝 그쳤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한편으론 호랑이를 영적인 동물로 생각했다 한다. 산신령을 따라다니기도 하며 효자, 열녀 등 의로운 사람을 돕는다고 한다. 이런 점에 관한 한 이야기가 있는데...때는 조선시대 한양에 아버지를 모시는 박태성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소문난 효자였다. 그래서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는 물론이고 돌아가신 후에도 삼년상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묘를 찾았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그 날 따라 눈보라가 매우 휘날렸는데 그는 그런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는 여전히 묘를 향했다. 눈보라는 굉장히 심하게 몰아쳤다.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던 그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으... 여기서 쓰러지면 안돼."
자신의 몸 보다는 아버지의 효를 먼저 떠올린 그였다.  그렇게 점점 의식이 흐려질 때였다."어흥" 설상가상이었는지 커다란 호랑이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박태성은 겁은  커녕 큰 소리로 꾸짖었다.

 "이놈! 아버지의 묘에 문안 드리러 가는 이를 먹으려 왔느냐!" 
그러자 호랑이는 말을 알아 들었는지 자기의 등에 타라는 시늉을 하였다.  그걸 알아챈 그는 호랑이의 등에 올랐다. 그러자 호랑이는 쏜살같이 뛰더니 묘까지 안내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그를 태워 마을까지 데려 주었다.이후 호랑이는 매일 박태성을 태우고 묘를 왔다 갔다 하였다. 그래서 3년상이 끝나는 날이 왔다.  박태성은 호랑이를 안고 울면서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그동안 고마웠다. 훗날 나도 여기에 묻힐 진데 죽는 날까지 널 잊지 않으마."

호랑이도 눈물을 흘렸다.  몇달 후 박태성은 건강이 나빠졌던지 그만 세상을 떠났다. 유언대로 그는 아버지의 묘 옆에 묻혔다. 그 후 어느날 한 마을 사람이 박태성 묘 옆에 죽은 호랑이를 발견했다.바로 박태성을 태워주던 호랑이었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모이더니 저마다 가죽을 벗기자고 말했는데 한 노인이 조용히 읊조렸다.

"이 호랑이는 박태성을 태우고 다녔던 호랑이야.그를 그리워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모양이야......."

말을 마치자 사람들은 박태성 묘 옆에 호랑이를 묻었다. 그 박태성으로 인하여 마을이 효자리로 되었다고 하고 지금도 세 개의 무덤이 나란히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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