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윤상현 전 원내수석부대표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은 해프닝성으로 쉽게 넘길 사안이 결코 아니다. 지난해 NLL 포기 논란은 전무후무한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로 이어지면서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과 함께 정국을 마비시키고 국론을 분열시켰던 메가톤급 이슈였다. 그 전면에 새누리당 정보위원장인 서상기 의원과 윤 의원이 있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당내 최측근 인사로 꼽혔던 윤 의원은 당시 논란과정에서 여당의 선봉에 서서 야당과 각을 세웠던 인물이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NLL을 상납하고 굴욕적 '갑을 남북관계'로 만들었다"며 "당시 회담을 기획하고 만든 장본인이 국민 앞에 세세히 밝혀야 한다"며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의원의 책임론을 제기했었다. 그랬던 그가 1년만에 갑자기 180도 입장을 바꿔 "김정일 위원장이 4번이나 '포기'라는 단어를 쓰며 (노 전 대통령을) 유도했으나 노 전 대통령께서는 한번도 포기라는 말을 쓰지 않으셨다"며 "노 전 대통령께서 세게 반박하지 못했던 점은 아쉽지만, 어떻게 국가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께서 NLL, 대한민국 영토를 포기할 수 있었겠느냐. 그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노 전 대통령께서는 NLL을 뛰어넘고 남포에 있는 조선협력단지, 한강 허브에 이르는 경제협력사업이라는 큰 꿈을 가졌던 것으로 사료된다"고도 했다. 당시 문재인 의원이나 민주당측의 주장과 어떤 면에서는 한치도 다를바 없는 얘기다.

그의 이 발언은 밥자리나 사석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원내수석부대표를 마치는 소회를 전하기 위해 일부러 국회 기자회견장인 정론관을 찾아와서 한 얘기였다. 작심하고 한 말인 것이다. 그는 왜 뒤늦게 이 얘기를 꺼낸 것일까.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세간에서는 그의 이런 입장 발표에 대해 "양심선언을 한 것"이라느니, "악역을 맡았는데 알아주지 않은 박 대통령에 대한 서운함 때문"이라느니 하는 별의별 말들이 떠돌고 있다. 그런가 하면 같은 당 하태경 의원은 "자신의 달라진 생각을 솔직하게 표명하는 것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며 "윤 의원이 보여준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윤 의원은 회견장에서 "지난 1년 동안 야당 분들이 듣기에 거친 표현을 썼던 점에 대해 송구하다"며 "정치게임의 플레이어로 전면에 있다보니 여러가지로 야당분들께 마음의 상처를 드렸다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고 한다. 언뜻 원내수석부대표라는 자리에 있으면서 자신이 주도했던 NLL 논란에 대해 야당의원들에게 뒤늦은 미안함을 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사안이 너무 위중하다.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를 둘러싼 진실공방, 정당회담 대화록 공개 찬반 논란 등 엄청난 국가적 에너지를 소진시켰던 이슈였기에 더욱 그러하다. 대화록이 공개된 이후에도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NLL 포기냐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NLL은) 괴물처럼 함부로 못건드릴 물건", "바꿔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이 포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주장하고 있고, 또 다른 측에서는 "포기라는 말이 단 한번도 들어가 있지 않다. NLL을 평화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밝힌 것"이라고 주장한다. 윤 의원은 최소한 이번 입장 번복 이전까지는 전자의 입장, 그것도 맨 앞줄에 서 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갑자기 후자로 입장을 바꾸었다면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1년전에도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아니라면 언제 생각이 바뀐 것인지, 그리고 왜 현 시점에서 이런 발언을 하게 됐는지 등도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은 국민의 의문에 응답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일간경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