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홍 목사(서문교회‧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박원홍 목사(서문교회‧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구약 성경 열왕기하 24장이 배경인 ‘나부코’(느부갓네살의 이탈리아 이름)는 오페라의 거장 베르디의 걸작이다. 제3막 2장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예루살렘 멸망 후 바벨론 포로가 된 히브리인들이 조국을 그리워하는 통곡으로 시작한다. 예언자들의 희망의 메시지로 음악은 힘차게 진행되고 마지막 부분은 여호와께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며 피날레를 장식한다.

히브리 백성들은 노래라도 불렀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백성들은 노래는커녕 ‘어머니’라는 단말마적인 외침도 용납 안 되는 참혹한 징용, 징병, 종군위안부의 노예적 삶의 기록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께 꼭 한 번 가 보시라고 권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다. 그곳에서 일제 강점기에 우리 백성의 3분의1이 강제동원 당한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군함도는 지옥 섬이라고 별명을 붙였고, 일본군 성노예는 취업 사기 심지어 유괴당해서 왔다고 증명한다. 두더지처럼 막장에서 일하며 임금의 3분의1은 집으로 송금된다고 했는데, 고향에 와서 보니 한 푼도 오지 않았다. 20여만 명이 일본군 총알받이로 갔다가 돌아온 사람이 거의 없었다 등의 기록으로 가슴이 쓰리다.

정녕 눈물이 핑 도는 이야기는 ‘어머니를 큰 소리로 부르지도 못했다. 그랬다가는 몽둥이로 무차별 구타당했다’고 증언한다. 우리의 아버지나 삼촌들은 ‘어머니’를 목놓아 부르지도 못했다니 가슴이 미어진다.

지난 3월6일 윤석열 정부는 일본 강제동원 가해 기업의 사과도 배상도 없이 우리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보상하는 안을 강제동원 ‘해법’으로 발표했다. “대한민국의 높아진 국격과 국력에 걸맞은 대승적 결단”으로 “우리 국민의 아픔을 적극적으로 보듬는 조치”이자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면서 실질적 해법을 제시”했다는 해괴망측한 자찬에는 말문이 막힐 뿐이다.

‘죽어도 배상 못하겠다는 일본 정부와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해 ‘결단’을 했다는 망언으로 국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 일본 우익 교수는 방송에 나와 일본이 100:0으로 승리했다고 비아냥거렸다. 결국에는 하야시 일본 외무상이 ‘강제 동원은 없었다’고 망언을 해도 이미 우리 정부는 제대로 항변도 못하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일제 강점기는 합법적 통치였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인정한 것이고 일제에 의한 식민 지배는 불법이고 징용문제는 강제동원이었다는 대법원 판결을 행정부 수장이 정면으로 부정하는 불법을 자행한 것이다.

필자 주위에 보수의식을 가진 목회자들도 고개를 들 수 없는 패착이라고 했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니 해방 이후 최고의 굴욕적인 외교 참사로 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의 국격을 내동댕이 치고 ‘식민지배는 불법’이라는 우리 헌법의 근본정신을 훼손했다. 대한민국 백성들에게 씻을 수 없는 굴욕감을 주고 인권을 유린당한 일제 강제동원피해자들이 돈 몇 푼에 인격을 파는 것처럼 모멸감을 줬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내부적으로는 미국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어 벌어진 외교적 참사이지만 외교적으로는 우리 정부가 자원하여 선언한 격이 되어 되돌리기조차 어려운 현실이 더욱 통탄스럽다. 가해행위에 대한 용서는 피해자가 만족할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인데, 가해 사실을 부정하고 피해국에게 해법을 가져오라고 강요한 일본 정부는 이제 오만한 태도로 사과도 배상도 없이 면죄부를 받은 것이니 기고만장할 것이다.

미국과 일본에 지는 것은 굴복이고 백성에게 지는 것은 결국 모두가 함께 승리한다는 것을 모르시는지요? 대통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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