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에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차기 대선주자 영입설이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얼마전 새누리당 친박 인사들의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이 반 총장의 출마가능성을 주제로 공개 토론회를 연데 이어 새정치민주연합 권노갑 상임고문이 3일 자신의 회고록 `순명' 출판기념회에서 "반 총장 쪽에서 와서 새정치연합쪽 대선후보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타진해 왔다"고 말해 논란을 키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로 유명한 권 고문은 현역에서 은퇴한지 오래지만 아직도 야당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물급 원로라는 점에서 그의 언급은 간단치 않은 파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역시 동교동계인 정대철 상임고문은 4일 "본인은 영입을 원하겠지만 전체적 견지에서 볼 때는 경선을 통해 후보가 돼야 값어치가 더 있다. 경선해도 어려운 게임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한 발짝 더 나아갔다.  
 
대선을 3년여나 남겨놓은 시점에서 왜 여야가 앞다퉈 반 총장 영입 얘기를 하는 것일까. 반 총장은 최근 한 여론조사 기관의 차기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현역 정치인 가운데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더블스코어 차로 따돌리며 40%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했다. 뚜렷한 차기 주자가 없는 여야 모두 반 총장에게 군침을 흘리고 있는 표면적 이유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정치권 인사들은 공히 정통외교관료 출신으로 세력기반도 없는 반 총장이 국내정치의 흙탕물에 뛰어들어 대중앞에 민낮을 드러내는 순간 지금같은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서 난데없이 반 총장 띄우기에 나서고 있는 것은 작금의 각당 사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유력한 차기 후보군이 모두 비박계인데다 김무성 대표의 '개헌론 불가피' 발언이후 친박측의 김 대표에 대한 노골적인 견제가 반 총장 영입론으로 드러났다는 것이 유력한 분석이다. 야당 역시 당내 주류인 친노계 문재인 의원의 대항마로 반 총장을 끌어들이려는 듯한 인상을 지울길 없다. 반 총장 영입설에 대해 친노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반총장을 국면타개나 내부 당권투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여야의 정략적 발상은 반 총장과 한국 정치 모두에 이롭지 않다. 국민들은 현 대통령의 임기가 3년도 넘게 남은 지금 미래의 지도자가 누가 될 것인지에 크게 관심이 없다. 

세월호 정국의 여파와 남북관계 경색으로 인해 갈라질대로 갈라진 대한민국에 소통과 화합의 장이 열리길 기대하고 있고, 저성장의 늪에 빠진 경제를 살리는데 정치권이 훼방꾼이 아닌 길안내자가 되길 고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후진적 정치문화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권의 쇄신 노력을 갈망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여야의 반 총장 띄우기는 다음 집권에만 혈안이 돼 누굴 끌어들일까만 궁리하고 있는 구시대 정치의 가장 밑바닥 행태에 다름 아니다.  
 
다자외교의 중심인 유엔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 미묘한 조직이다. 대륙별, 동맹별 카르텔이나 담합은 국내정치 정파 이상이며 각국의 민감한 정치 사안은 그곳에서도 여러 경로를 통해 실시간 모니터링된다. 유엔 사무총장이 자국의 유력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것은 `굿 뉴스'라기 보다는 유엔 수장을 견제하거나 비판하는 세력의 좋은 먹잇감이 될수도 있다. 

반 총장이 재선되기 직전인 2011년 국내 정치판에서 그를 유력 대선 후보로 언급했을 때 반 총장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세력쪽에서 "유엔 수장 자리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며 재선 불가사유로 들이밀었던 것이 단적인 예다. 

한국 대통령보다 더 중요할수도 있는 유엔 사무총장을 정략적 이해에 따라 3년 이상 남은 대선과 연계시키는 것은 반 총장 개인에 대한 예의도 아닐 뿐더러 국제사회에 대한 신의성실의 원칙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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