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이 2차 양적완화에 착수하면서 '엔화 약세' 후폭풍이 한국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개장 전, 원ㆍ엔 재정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년 8월21일 이후 처음으로 100엔당 940원대로 내려갔다. 개장 직후 원ㆍ달러 환율이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원ㆍ엔 환율은 다시 951원대를 회복했다. 

달러 강세와 엔화 약세가 엇갈리면서 원화 환율이 춤을 춘 것이다. 달러 강세가 어느 정도 완충작용을 해주고는 있지만 엔저의 기울기가 더 가팔라 원ㆍ엔 환율의 하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6년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원ㆍ엔 환율이 앞으로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치열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
 
엔화 약세는 여러모로 장기 추세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 통화당국은 지난달 31일 시중 통화 공급량을 지금보다 10조~20조엔(약 100조~200조원) 늘리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다. 연간 약 60조~70조엔의 자산을 사들여 시중에 통화를 풀던 것을 최대 80조엔까지 늘리기로 한 것이다. 

소비세 인상에 따른 소비 위축, 국내 총생산 감소 등으로 동력을 잃어가는 아베노믹스에 다시 한 번 기름을 부으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물가안정 목표의 조기 실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밝혀 추가적인 금융완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세계 금융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엔화 약세를 용인하고 있어 일본은행의 추가 금융완화 의지는 현실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원ㆍ엔 환율은 900원대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원ㆍ엔 환율의 하락은 한국 수출기업에 심대한 영향을 준다. 한국의 수출 상위 100대 품목 가운데 일본과 겹치는 것이 55개에 달하며 이들 품목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54%에 달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엔화 약세가 지금과 같은 추세로 계속되면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수출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시장은 이미 경고음을 내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해온 조선업종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승승장구하던 STX그룹은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세계 1위 조선업체 현대중공업은 사상 최대의 적자를 내며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다. 일본 업체들과 정면 대결을 펼쳐야 하는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 '3인방'의 주가도 크게 떨어졌다. 

현대차는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겨졌던 16만원선이 무너지면서 3년7개월 만에 시가총액 2위 자리를 내주고 3위로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문제는 엔저 대책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원ㆍ달러 시장은 있지만 원ㆍ엔 시장은 없어 정부가 손을 쓸 방법이 없다. 가계부채가 크게 불어난 상황이어서 미국이나 일본 같이 무한대로 돈을 푸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팔짱을 끼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우선 원ㆍ달러 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이 완충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내수 활성화, 구조개혁 등 전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나서야 한다. 우리가 우위에 있는 일부 제조업을 끝까지 지키면서 일본이 우세인 부품소재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 그리고 내수를 살리려고 마련된 경제활성화 법의 국회 통과를 서둘러야 한다. 

국회는 적극적으로 심의에 나서 필요한 부분은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 최경환 경제팀은 확장적 경제대책을 내놓았지만 국회에 발목이 잡혀 한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적극적인 경기부양에 방점을 둔 '초이노믹스'에 대해 최소한의 기회는 부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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