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시중에 제한 없이 돈을 푸는 미국의 양적완화(QE. quantitative easing) 정책이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28~29일(현지시간) 이틀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열어 지난 6년간 시행한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종료한다고 선언했다. 

채권 매입을 통해 무한정 돈을 푸는 '실험적 통화정책'이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주지 않고 완료됐음을 대내외에 선포한 것이다. 연준은 이어 상당기간 초저금리 기조를 이어가겠지만, 고용 및 인플레이션 목표에 더 빨리 접근한다면 금리 인상도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고 밝혀 통화정책의 기조전환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세계 경제의 흐름을 좌우하는 미국의 통화정책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함에 따라 이런 변화가 국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의 통화정책 전환이 글로벌 유동성 축소, 자본 유출, 국제 금리 상승, 소비 제약과 기업투자 위축을 초래해 신흥국 경제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면서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 다른 전문가들은 경제 여건이 취약한 일부 신흥국에는 충격을 주겠지만 기초가 튼튼한 한국 경제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정부도 대체로 낙관적인 견해를 보인다. 

기획재정부는 "양적완화를 종료하고 상당기간 초저금리를 이어가겠다고 한 것은 예상했던 부분"이라면서 시장이 크게 혼란스러워질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선진국의 통화정책 차별화로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 가능성이 확대됐다"면서도 "한국은 신흥국과 차별화돼 대규모 자본유출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양적완화 중단은 그동안 '테이퍼링(tapering. 자산매입축소)' 프로그램에 따라 단계적으로 이뤄진데다 충분히 예견된 조치인 만큼 시장에 주는 충격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려되는 것은 연준이 "고용 및 인플레이션 목표에 더 빨리 접근한다면 금리 인상 또한 현행 예측보다 빨라질 수 있다"고 언급한 대목이다. 

이는 연준 내 조기 금리 인상을 주장하는 매파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돼 시장에서는 달러화가 강세를 보였다. 기준금리 인상이야말로 미국이 변칙적인 통화정책을 진정으로 종료하고 정상적인 통화정책으로 복귀하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의미한다. 

비관론자들은 미국이 예상보다 빨리 금리를 올리면 신흥국에서 급격한 자본 유출이 일어나 통화가치가 절하되고, 금리가 상승해 실물경제가 위축될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에 비해 낙관론자들은 미국의 조기 금리 인상은 그만큼 미국 경기가 좋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세계 경제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견해를 밝힌다.
 
장기 전망은 엇갈리지만 미국의 통화정책 전환이 단기적으로 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증대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특히 단기외채가 많거나 외환보유고가 충분하지 않은 신흥시장의 통화가치 하락이 우려된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벌써 터키,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 5개국을 '프래자일 5(Fragile 5)'로 지목하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 한국 경제는 미국의 금리 인상만으로 중대 타격을 받을 만큼 취약하지는 않다. 지난 9월말 기준으로 쌓아놓은 외화만 3천644억1천만달러에 달한다. 

내수가 어렵지만 경상수지는 31개월째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수출선도 충분히 다변화돼 있다. 일시적으로 자본 유출, 환율 상승, 주가 하락 등이 일어날 수 있지만 경제 전체를 흔들지는 못할 것이다. 과민반응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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