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서부소방서 석남119안전센터 소방교 김대현

여기 두 명의 환자가 있다. 둘 모두 심정지 이후에 119구급대원의 CPR로 생명을 건졌다. 한 사람은 퇴원이후 새로 얻은 삶에 대한 기쁨과 감사로 매일 운동하며 자신의 몸을 돌보고 이웃에 대한 봉사의 삶을 살고 있다. 반면 다른 사람은 또다시 심정지가 올까 걱정하며 외출을 삼가고 되도록 집 안에서만 머물며 전전긍긍 초조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비슷한 시기 같은 사고를 겪고 같은 구급대원에게 생명을 건졌지만 두 사람의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쳐지고 있다.

도시화와 경제 발전으로 인구의 증가 및 집중이 가속화되고 그에 따라 사건·사고가 늘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국가는 소방과 경찰 등 재난에 대한 대규모 대응조직을 운용하며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재난”이란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사고로 돌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개인의 역량으로 대처하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14년은 유난히 사고가 많은 해였다. 2월 마우나 리조트 붕괴(10명), 4월 세월호 침몰(314명), 5월 고양터미널 화재(8명), 장성 요양병원 화재(21명), 7월 광주 헬기추락(5명), 8월 창원 버스 침몰(7명), 10월 판교 환풍구 붕괴(16명) 등등 괄호 안의 사망자, 실종자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무겁다.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잠시 안타까워 하지만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잊어버리고 일상에 젖어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위의 사건들처럼 일반시민의 생활권에 밀접하여 내 주위 사람과 연관되거나 나에게도 그 영향이 미치면 우리는 불안해진다. 불안과 공포의 감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른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PTSD)를 겪게 되는 것이다.

2014년 대한민국은 반복되는 대형 참사로 인해 전국민이 PTSD에 빠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시민들이 뉴스를 기피하고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으며 소비가 줄어 경제가 힘들어졌다는 푸념도 나온다.

힘든 일이 있으면 힘들어 하고, 슬픈 일이 있으면 슬퍼하는 게 당연하다.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이 외상후 스트레스로 불안장애를 겪는 일도 자연스러운 반응이며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서두에 든 예처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누구나 살면서 감당하기 힘든 풍파가 몰아치는 경우를 겪게 되는데, 큰 상처와 충격에 절망하고 쓰러지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소수의 사람들은 그 경험을 통하여 배우려고 한다. 자신의 삶과 주변 인간관계에서 한 단계 성장하고 인간적인 성숙을 이루는 사람들이 있다.

PTSD와 반대되는 이런 현상을 외상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PTG)이라고 한다. 심리학적으로는 유연성(flexibility) 혹은 탄력성(resilience)라고 말할 수 있는데 절망의 상황이 다가오고 거대한 충격이 부딪쳐 와도 유연한 대나무처럼 흡수하여 그 힘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재난 그 자체보다는 재난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이후의 삶에서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여기 온갖 사고의 위험을 벗어나 ‘오늘’ 이라는 삶을 선물 받은 인간이 있다. 끔찍한 경험과 공포로 주눅 들어 살 것인가. 보다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삶을 살 것인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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