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경기=홍정윤 기자] 필자는 지난 2020년 허연 著‘ 박꽃’이라는 시집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이 책을 선물해 준 허용 대표는 “아버님이 고인이 되신 할아버지의 시를 모아 출간했다”라고만 설명해줬기 때문에 ‘박꽃’이라는 고운 제목처럼 연서인가라는 단순한 생각 하에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허나 故 허연 선생의 둘째 子 허일이 저자인 부친에 관해 소개한 전문을 읽으며 ‘한 사람만의 삶이 아닌 시대가 녹아져 있는 글이겠구나’라는 눈뜨임에 집중해 버렸다.

추담 허연 선생은 1896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조실부모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났으나, 연희전문 2학년이던 1919년 미국으로 떠나 1932년 펜실바니아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마쳤다.

그리고 바로 그 해 허연 선생은 흥사단에 입단한 후 일제 치하의 조국으로 귀국했다.

 
 

허연 선생은 ‘조국이 독립하더라도 그 독립된 나라를 운영할 인재를 양성하지 못하면 장래가 없다는 흥사단의 강령에 공감해 협성실업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해방 후에는 중앙상업학원(4년제 대학)도 설립했다.

그러나 허연 선생은 1937년 소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일제가 조선지식인의 민족의식을 말살하려할 때 안창호·이광수·주요한·김윤경·조병옥·장리욱·백락준·한승인·현정주 제씨 등의 흥사단원들과 함께 일경에 검거돼 일년 반의 고문과 옥고를 치뤘다.

허연 선생이 향년 53세의 일기로 단명한 것은 이 때의 옥중 생활에서 얻은 지병인 폐렴이 빌미가 되었다고 후손들이 밝히며 이를 안타까워 했다. 

허연 선생은 사람의 일생을 회자할 때 '길어야 한 팔십리(八十里) 길을 걷는 셈이다. 그러나 혹은 오십리(五十里)도 못가서 해가 지고 잘 걷는 사람은 팔십오리(八十五里)에 지는 해를 바라보기도 한다'고 고 글을 썼다.

또 허연 선생은 그 나이 46세에 쓴 '내가 걸어온 사십리(四十里) 단로(單路)는 좋았던가. 나빴던가'라는 글로 미국 동·서부를 떠돌아다니면서 독립을 위해 매진했던 일생과 조국에 돌아와서도 일제의 현실과 사회의 부조리를 개탄하는 심정을 대변하기도 했다.

이후 허연 선생은 흥사단 활동과 함께 미군정의 입각 제안 거절, 인재양성을 위해 교육활동에 매진하는 등 조선을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세간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허나 그의  아들들은 허연 선생의 시와 글을 모아 '박꽃'이라는 시집을 출간하고, 손자인 허용 대표 또한 조부에 대해 조사해 잊혀질 뻔한 또 한명의 독립유공자가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허용 대표는 조부에 관련해 자료를 찾던 중 우연히 독립기념관 한국 독립운동 정보 시스템에서 흥사단 단우 번호 265번인 허 선생의 친필 입단서를 찾은 것이다.

 
 

허연 선생의 흥사단 입단서는 “흥사단(興士團)의 근본적주의(根本的主義)가 무엇이뇨?”로 시작해 5장에 달하는 16개의 문답으로 이뤄져 있다.

또한 허연 선생은 '확고한 정신을 갖추고 자신을 단련하며, 단결(團結)의 정신(精神) 위(爲)하여 정공(公正)을 굽히지 않고, 민족대중(民族大衆)속에서 민족대중(民族大衆)을 위(爲)하여, 그리고 마침내 민족주의(主義). 우리민족과 국가독립(國家獨立), 조국 대한민국의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라고 적시했다.

이와 같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은 혀연 선생은 일찍이 유언으로 “내 죽으면 도산의 발치에 묻어달라”는 바람을 남겼으며, 이에 그는 망우리역사문화공원 도산의 묘지 인근에 영면해 있다.

세상에는 이와 같이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한 숨겨진 애국자들이 있다. 이들은 가슴 절절히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였으며 이들에 의해 우리 후손들은 평안을 누리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국가와 정부 또 일반 시민들도 인정받지 못한 숨겨진 독립유공자들을 끊임없이 찾아내어 고인을 추대하고 기려야 할 것이다.

 

-아기의 앞길-

 

     추담 허연 著

 

악이 선을 짓밟고 

거짓이 참을 이긴다고 

도적이 매를 들고

켄 위에 높이 선다고

아기여 너는 무서워 말라

굳세고 더욱 용감하라

 

지는 해 다시 

바다를 건너 산을 넘어

네 앞길을 비치나니

어둔 밤은 잠간 이니라

아기여 너는 광명한 아침의 아들

푸른 아침빛을 몸에 지니고

새날에 힘차게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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