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안승남號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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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안승남號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없다
  • 이형실 기자
  • 승인 2020.09.02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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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시와 달라도 너무 다른 구리시
                              이형실 기자.
                              이형실 기자.

지난해 가을 문턱, 서기관 신분의 한 공직자가 필자에게 투정이 섞인 하소연을 했다. 주말이면 청첩장 등 대여섯 통의 준조세 성격의 안내장을 받는데 한 달이면 봉급의 3분의1이 부조금으로 나갈 수밖에 없어 힘들다는 너스레다. 필자는 ‘당신도 사회의 고위층’이라고 짧은 말로 투덜대는 그의 입을 막았다. 

그랬다. 그가 일반 평직원이었다면 주말마다 그 많은 안내장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 배달되는 많은 안내장은 그가 공직사회 간부이기 때문이다. 그 위치에서 누리는 혜택만큼 도덕적 의무와 책무가 요구된다는 뜻이다. 이른바 그 안내장은 품위를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이다. 이처럼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우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용어는 프랑스 소설가 오노레 발자크가 1836년에 발표한 ‘골짜기의 백합’이라는 작품에서 처음 등장한 말로 무개념의 졸부들을 일깨울 때 자주 인용한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모든 말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귀족은 빚진 사람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단정하고 있다. 이 말뜻은 ‘사회가 부여해 준 지위는 공짜가 아니라 일종의 빚이기에 지위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하면 사회는 그 지위를 박탈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단순히 ‘특권층만의 의무’ 정도로만 여긴다면 그건 오류다. 기업이건, 단체건 어느 조직이든 간에 적용된다는 뜻이다. 발자크가 말한 것과 같이 사회에서 특권을 인정해 주는 사람은 그 대가를 반드시 갚지 않으면 안 될 일종의 채무를 진 셈이다. 그 채무를 단지 생각만의 개념이 아닌 실천하는 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지난 1월20일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한 이후 국민은 살아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심적 물질적 고통을 당하고 있다. 먹고 마시는 즐거움의 소중함을 몰랐다. 보고 싶은 사람과의 만남도 대화도 이렇게 귀한 것인지 몰랐다. 이런 것들이 인간의 우매에서 발생한 일이라면 그래, 인정한다. 그런데 사랑하는 피붙이가 생과 이별하는 장례식에도 갈 수 없게 만든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참으로 개 같은 경우 아닌가.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위력은 대단했다. 인간으로서 감당하기엔 너무 나약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점점 안전의식에 감각을 잃을 무렵,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광역 지방자치단체의 재난기본소득 지급은 피폐해진 국민과 지역경제에 ‘키다리아저씨’ 역할을 했다. 비록 관제 기부라는 논란도 있었지만 ‘기부는 돈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은 2인 가족분에 해당하는 긴급재난지원금 60만 원 전액을 기부했다. 그리고 정부의 고위급 인사들, 사회고위층들도 기부동참행렬에 가담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과부 설움은 홀아비가 안다’는 속담이 말해주듯 사회 저소득층 필부들의 거룩한 기부가 줄을 이었다는 점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경제적, 심적으로 조금 여유가 있다고 선뜻 기부에 동참한 이들의 선행이 우리나라를 ‘아직 희망이 있는 나라’로 만들었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이런 필부들의 ‘기부의 의미’를 깨달을 줄 알아야 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들도 단체장 포함 5급 이상 간부공무원들이 기부금을 모아 고통을 분담하는 데 앞장섰다. 대통령과 같이 정부재난지원금의 전부를 기부하는 기초단체장들도 꽤 있었다. 이렇듯 강요든 자발적이든, 자의든 타의든 간에 이런 기부행위를 일컬어 필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라고 단정하고 싶다.

필자는 민선 출범 이후 현재까지 구리시와 남양주시를 출입했다. 초대부터 6대에 이르기까지 양 시 모두 3명의 시장을 배출했는데 필자는 그들이 만들어 낸 역사를 모두 경험한 셈이다. 굳이 역대 시장들의 궤적에 대해 공과를 따질 것까지 없겠지만 모나거나 무능하리만큼 형편없고 기준 미달인 시장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더욱이 언론관만큼은 그랬다. 

지난 7대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의 단체장들이 전국을 휩쓸었다. 구리와 남양주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같은 당 소속에다 출신학교도, 젊고 패기에 찬 성격도 같았다. 거침이 없는 시정 운영도 닮았다. 그런데 ‘달도 차면 기운다’라고 했듯 7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양 시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시정은 달라도 너무 다른 천양지차를 보인 것이다. 물론 지향하는 이상과 생각 사고방식이 같을 수는 없다. 조급한 판단을 지양해야 할 이유다. 그러나 재난을 직면한 똑같은 상황에서 어떤 시가 ‘나아 보이는가’의 우월성은 지도자의 의지와 솔선수범의 리더십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번 코로나 정국에서 조광한 남양주시장의 리더십은 단연 돋보였다. 시장의 솔선수범에 힘입어 기부금 액수도 전국 지자체 중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남양주시장은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4개월치 급여의 30%인 1118만2000원과 정부재난지원금 87만1000원,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40만원, 시 재난긴급지원금 40만, 특강강의료 120만원 등 총 1405만3000원의 통 큰 기부를 했다.

시 공직자들도 자발적으로 동참했다. 부시장과 행정기획실장도 4개월치 급여 10%에 해당하는 272만6000원, 257만6000원을, 국 과장급 5%의 1억2027만2000원 등 시의 과장급 이상이 총 1억2567만4000원을 기부했으며 6급 이하 직원들도 1억8300만원을 기부해 모범적인 공직자상을 정립했다. 

이러한 공직사회의 수범은 자연적 사회 전반으로 이어졌다. 긴급재난기본금의 일부를 기부하는 ‘시민끼리 버팀목이 되자’라는 캠페인을 벌여 2주 만에 1억3000만원이 모아졌으며 화도읍 이장협의회 500만원, 페리카나 자영업자 200만원 등 다양한 계층에서 자발적인 기부행렬에 참여, 엄청난 액수의 성금을 기부해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줬다. 시의 시장을 비롯해 공직자, 시민들 모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셈이다. 

이와 반면 구리시는 어떤가. 시 면적은 남양주시에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적지만 재정자립도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코로나19와 관련해 고통을 분담한다는 차원에서 공직사회의 기부 소식은 마감일인 지난달 31일에도 들려오지 않았다. 기부행위는 뉴스밸류 중에 으뜸이다. 자그마한 일에도 보도자료를 뿌리는 구리시의 입장으론 시장이나 시의원이나 공직사회 등의 기부내용은 보도자료의 자료로서 효용 가치가 높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기부에 관한 보도자료가 없는 걸 보니 내세울 기부실적이 없는 모양이다. 구리 공직사회의 간부급 이상 공무원들은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스스로 저버린 것인가. 어쩌면 남양주시와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구리 간부공무원들의 단체 기부가 설혹 무리였었다면 시장이라도 기부에 동참했다는 선행소식이 전해지기를 기대했는데 보도자료는 끝내 제공되지 않았다. 혹시 군자처럼 기부행위를 외부에 알리지 않았었을지도, 시장 가족 몫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의제기부 하기 위해 수령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누가 아는가. 4개월 치 급여 30%를 기부하는 남양주시 조광한 시장의 통 큰 행보는 아니어도 급여 일부분을 남모르게 기부했을 수도 있겠다. 바람이지만 그랬다면 좋겠다. 한편으론 누구보다 지역을 살피는 분이기에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부를 포기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말이다. 어느 누가 됐건 명색이 한 지방을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지도자라면 위기 상황에서의 고통을 나눌 줄 아는 아량과 그에 따른 최소한의 도리라도 지키는 것, 이것이 시민과 사회에 대한 예의다. 이것을 강조하고 싶다. 맹자는 일찍이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無羞惡之心 非人也)라고 ‘수오지심’을 설파했다.

코로나 19로 인한 경제 위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고통도 지금부터다. 살림살이는 더욱더 미궁으로 빠져들어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견된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데 우리는 그런 나라에서 어처구니없는 상황과 맞닥트리게 될 것인지도 모른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암울한 이 난국에 묵었던 체증이 확 내려갈 정도로 청량하고 깔끔한 사고의 깨어있는 정치인은 없을까. 솔선수범과 겸손을 겸비하면 금상첨화인데. 국민은, 시민은 이런 지도자의 탄생을 꿈꾸는 게 사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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