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개헌론 발언 및 그 철회 과정을 보면 정치공학적으로는 이해할수 있다손 치더라도 집권당 대표이자 유력 대선주자로서 갖고 있어야할 품성이나 품격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그가 중국 출장중 기자간담회에서 "정기국회후 개헌론이 봇물 터지듯 할 것이며 이를 막을수 없을 것"이라고 한 발언은 휘발성있는 개헌 문제를 집권당 대표가 끄집어냈기 때문에 이목을 끈 것만은 아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개헌은 경제를 삼키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며 개헌논의 자체를 일축한지 열흘만에 작심하고 박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모양새를 연출했기에 그의 속내에 대한 관심이 더 컸던 것이 사실이다. 

김 대표는 그러나 하루만에 "죄송하다"며 꼬리를 내렸다. "대통령께서 이탈리아 아셈회의에 참석하고 계시는데 예가 아닌것 같다.", "불찰이었다."고 거듭 사과했다. 

5선 국회의원이자 30여년간 정치를 해온 김 대표가 자신의 개헌 발언이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몰랐다면 너무 순진한 것이고, 알면서 그랬다면 너무 가벼운 처사다. 반기를 드는 모습을 연출했다가 곧바로 꼬리를 내린 것이 정치공학적인 `치고 빠지기'식 설계였다면 그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는지 모르겠다. 

현직 대통령에게 대드는 자신의 비박(非朴) 이미지를 은연중 드러내면서 차기 주자로서의 인지도 제고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결국 자신의 정치적 소신인 개헌론을 재점화시킨 효과도 거뒀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은 김 대표의 사과를 '청와대 눈치보기'라고 공격하면서도 정기국회후 개헌특위 구성을 공식 제안했고 김 대표 자신도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개헌논의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 역설적으로 정기국회 이후에는 개헌론을 밀어붙일 것임을 시사했다. 결국 여권 친박계 일부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올해 말, 내년 초면 여의도발 개헌 논의는 가속화할 전망이다.  
 
'1987년 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 정신을 헌법에 담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개헌 논의의 필요성은 많은 국민과 정치인들이 동의하고 있다.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 논의는 개헌론의 핵심이다.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개헌에 찬성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더욱이 앞으로 2년 동안 선거가 없고 아직은 차기 대선에 대한 부담도 없는 시기이니 지금이 논의의 적기라는 개헌론자들의 주장 역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일정한 방향성을 갖지 않은 중구난방식 개헌 논의의 함정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권력누수를 염려하는 청와대의 입장은 차치하더라도 2원집정부제니 4년중임 대통령제, 내각제 등 중구난방인 권력구조 개편 논의는 우리 사회를 오히려 4분 5열 시키면서 가뜩이나 '내편', '네편'으로 갈라서 있는 사회분열을 더욱 극대화시킬 공산이 크다. 

또 여의도발 개헌론은 현직 정치인들의 기득권 강화쪽으로 결론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국민의 불신도 여전하다. 제왕적 대통령제 대신 제왕적 국회의원의 탄생 쪽으로 논의가 전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현 시점에서 개헌 논의가 밑에서 촉발돼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위를 압박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국민적 합의 모색 작업은 선행돼야 한다. 군불도 때지 않고 방이 충분히 덥혀졌다고 억지를 쓸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김 대표는 현재 차기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여야를 통틀어 박원순 서울시장과 1,2위를 다투고 있는 유력 주자다. 

그런 그의 이번 섣부른 개헌론 제기와 '불찰' 사과 파동은 그의 정치적 셈법과는 별개로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염증을 더욱 부채질하는 결과만 초래했다. 그 뿐 아니라 개헌논의가 갖는 무게를 경감시키고 희화화해 그의 당초 셈법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향후 역풍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국민은 책임질줄 알고 당당하며 신뢰할수 있는 리더십을 원한다. 그 기대를 거슬러서는 아무리 정치공학적 접근에 능수능란하다 해도 궁극적 성공을 이루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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