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南北)이 지난 15일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당국자간 접촉에 대해 서로 엇갈린 주장을 내놓으면서 진실게임을 벌이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졌다. 남북의 평화 공존과 궁극적인 통일을 도모해야 할 남북대화가 상호 비난과 거짓말, 폭로 등으로 추한 모습을 보이는 양상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16일 `공개보도'를 통해 주장한 내용은 북한이 당초 '긴급 단독접촉'의 남측 당사자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요구했다는 것과, 회담을 비공개로 하자는 제의는 남한측이 먼저 했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에대해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김실장에게 단독접촉을 제의했다"고 말했다가, 다시 북측이 김영철 정찰총국장을 김실장의 상대로 내보내겠다고 적시했다고 말을 바꿨다. 

또 국방부는 비공개 제안과 관련, 북측의 긴급 접촉 제안에 대해 우리 측이 "'비공개 군사당국자접촉'을 개최할 것을 제의했고, 북측이 이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언론브리핑에서 북측에서 먼저 비공개를 강하게 요구했다고 말했었다.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셈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대북관계를 철저히 투명하게 하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천명해왔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측이 남북 접촉을 비공개로 할 것을 주장했다면 분명히 국민이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국방부가 17일 내놓은 입장자료에는 그 이유가 나타나 있지 않다. 또 우리가 먼저 비공개를 주장해놓고도 북측이 비공개를 요구했다는 식의 설명을 국민에게 한 이유나 그 책임자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정부가 이렇게 국민을 속인다면 국민이 어떻게 정부의 대북정책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국가안보실이나 국방부가 이런 식으로 북한측에 약점을 잡히고 대남공격의 빌미를 줘서는 안 된다. 대북정책 담당자들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박 대통령이 "전쟁 중에도 대화는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면서 대화 의지를 피력한 것이 엊그제다. 또 정부는 통일준비위원회까지 출범시키면서 큰 틀에서 통일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무자들은 북한의 의도를 잘 파악하고 남북대화를 진척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 남북대화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 돼야 한다.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지난 2011년 6월 베이징 남북 비밀접촉을 일방적으로 폭로하며 우리측을 곤혹스럽게 만든 적이 있다. 벌써 그 일을 잊은 것인가.  
 
북한측에 이런 식으로 공격의 빌미를 준다면 우리가 남북대화나 협상에서 우위에 서기 어렵다. 특히 북한은 치밀하게 서해북방한계선(NLL)의 유명무실화와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대남 사격 관례화를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이번 접촉에서도 우리 측에 "국회에서 법이라도 만들어서라도" 전단 살포를 막으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북한은 또 "삐라 살포가 (북한) 군대의 면전에서 노골적으로 강행된다면 직접 조준격파 사격과 같은 무자비한 물리적 대응이 가해지게 돼 있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정부는 북한의 이 같은 터무니없는 요구와 협박을 공개하지도 않았다. 국민은 이런 상황을 몰라도 된다는 얘기인가. 

이달초 인천아시안게임에 황병서 총정치국장 등 북한 실세 3인방이 전격 방문한 이후 지금까지 길지 않은 기간에 남북관계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실세 3인방의 방남(訪南) 때에는 이들의 청와대 방문 제안과 관련해서 논란이 있었다. 

이후 NLL 인근에서의 남북 함정간 사격전이나 대북 전단 살포와 관련한 북한군의 대남(對南) 고사총 발사에 대한 우리 측의 대응도 매끄럽지 못했다. 

국가안보실과 국방부, 통일부 등의 대북정책 담당자들은 좀 더 당당하고 치밀하게 남북관계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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