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여파로 관피아(관료 출신) 척결이 시대적 화두가 됐다. 공직을 퇴직한 후 관련 공사 및 공단, 일반 기업체 등의 기관장이나 감사 자리를 꿰차고 들어가 거액의 연봉을 받으면서 공직시절의 연을 토대로 부정부패를 일삼아온 관피아를 몰아내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관피아가 물러난 자리를 정피아(정치권 출신)가 속속 점령하고 있다고 한다. 속된 말로 '파출소 피하려다가 경찰서 만난 꼴'이다. 특히 국책은행과 계열사들이 정피아의 천국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 처우가 좋은 감사·사외이사 자리를 선호한다고 하니 여론의 지탄을 피하면서 실리를 챙기려는 속내가 그대로 읽혀져 씁쓸함을 더한다.  
 
연합뉴스 취재 결과 양종오 IBK캐피탈 감사는 새누리당 대선캠프였던 국민행복추진위에 몸담은 전력이 있고, 기업은행의 조용 사외이사도 강원도 정무부지사와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대표 특보를 지낸바 있다. 

공명재 수출입은행 감사 역시 국민행복추진위 힘찬경제 추진위원을 맡았었고, 박대해 기술보증기금 감사는 친박연대 국회의원 출신이다. 권영상 한국거래소 감사는 과거 총선과 대선에서 경남선대위 본부장과 정책본부장을 지낸 인물이며, 예금보험공사 문제풍 감사 역시 전 새누리당 충남도당 서산·태안 선거대책위원장을 지냈다. 

정송학 자산관리공사 감사는 2012년 새누리당 공천으로 총선에 출마했다 낙선한 인물이며 예보가 대주주인 우리은행의 정수경 신임 감사도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였다. 

이들은 대부분 금융권 전력이 거의 없으면서 선거의 논공행상이나 현 권력과의 친분관계를 이용해 자리를 꿰찼다는 공통점이 있다. 금용기관 감사는 2억원이 넘은 연봉과 차량, 운전기사, 개인비서 등을 제공받고 있어 `신(神)도 탐내는 자리'라는 말까지 나온다. 

과거 관피아들은 어찌됐건 수십년간 관련 공직에서 일했으니 해당분야의 전문성이라도 갖추었다고 볼수 있지만 정피아들은 기본 업무도 잘 모를뿐 아니라 정권과의 친분을 내세워 큰소리를 치고 심지어 기관 인사에 개입해 자기 사람 심기를 공공연하게 행한다고 하니 자칫 금융 공기업의 내적 토대가 크게 흔들리지나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감사의 기본 업무인 내부 통제가 제대로 이뤄질리도 만무하다. 외부 인사 영입을 마냥 비판할 일은 아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조직을 새로운 시각에서 들여다 보고 혁신의 기풍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인사 기준이 오로지 정권에 대한 충성심과 논공행상이라면 이는 관피아 보다 더한 폐해를 끼칠수 있다. 

물론 정피아에 대한 비판이 관피아의 부활로 이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특정집단을 배제한다면서 정치권 출신 인사들에게 특혜를 주는 낙하산 인사는 관피아 못지 않게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 자명하다.

 '∼피아'라는 출신 구분을 떠나 능력있고 적절한 사람을 자리에 앉히는 금융공기업의 투명한 인사시스템 마련이 이런 폐단을 근절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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