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준비위원회 제2차 회의에서 "고위급 접촉을 남북 관계 개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핫이슈인 5·24 문제 등도 남북한 당국이 만나서 책임있는 자세로 진정성있는 대화를 나눠 풀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황병서 총정치국장 등 북한 실세 3인방의 방남이후 모처럼 조성된 대화 무드가 대북전단 살포를 둘러싸고 휴전선 부근에서 총격전이 발생하는 등 불과 1주일여만에 파국 양상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남북 대화를 추진해 나갈 것이라는 우리 정부의 의지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특히 취임후 처음으로 5·24 조치를 언급하면서 이 문제를 고위급 회담에서 논의하자고 제안한 것은 전향적이라고 평가할만 하다. 요동치는 동북아 국제정세속에서 남북 관계를 이대로 놔둘수 없고, 관계 개선을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풀어나가려면 북측이 간절히 요구해온 5·24 조치 해제에 대해 대승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을 박 대통령이 일부 수용한 것으로 볼수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의 나경원 의원 같은 이도 국감에서 "변화를 모색하는 상황에서 껍데기만 남은 5·24 조치를 우리가 붙잡고 있는게 맞느냐"고 반문할 정도였다.  
 
그러나 대화가 오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가 갑자기 어느 한순간에 갈등과 긴장의 구도로 바뀌어왔던 남북관계의 이중성을 고려할 때 북측에 양보만 하는듯한 남북대화에 거부감을 보이는 정서가 우리 사회에 상당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선(先) 5·24 조치 해제의 목소리도 크지만 북한의 책임있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은 것이 그 방증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 당국자간 대화를 통해 5·24 조치 해제를 논의하자고한 박 대통령의 직접 언급은 남북 관계에서 어느 정도 유연성을 보이겠다는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 마저도 유엔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마당에 북한 김정은 체제가 기댈 곳은 한국밖에 없다. 북한 주민의 삶의 질 개선과 DMZ(비무장지대) 세계생태평화공원 건설 같은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제안은 당장 곤궁한 처지의 북한 경제에 도움을 줄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5·24 조치 해체의 대가로 우리 정부가 요구하게 될 천안함 폭침 인정 등은 그간 북한이 국제사회에 표명해왔던 입장 등을 고려할 때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일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내서 종내 적절한 합의를 이루는 것이 협상의 묘미다. 지레 짐작과 이른 걱정으로 아예 대화를 안 하는 것보다는 머리를 맞대고 난제를 푸는 것이 진정한 대화인 것이다.  
 
이제 공은 북한에 넘어갔다. 북측은 탈북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가 우리 정부의 배후 조종에 의한 것인냥 몰아 붙이면서 "2차 고위급 접촉은 물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전단의 내용이 북한의 최고 존엄을 모독하고 폄훼하는 것들인데다 1달러짜리 지폐와 생필품까지 매달아 보내니 북한 체제의 특수성에 비쳐볼때 끔찍이도 싫을 것임은 미뤄 짐작할수 있다. 
그러나 북한 역시 과거 남측에 수많은 삐라를 뿌리며 우리 체제를 비난하고 한미 동맹을 모략해 왔지 않은가. 남북 관계 개선과 평화적 교류를 통한 궁극적 통일 완수라는 대의명분에 비춰볼때 대북 전단은 매우 지엽말단적인 것이다. 이런 문제에 얽매여 고위급 접촉을 파탄시키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화전 양면 전술을 통해 우리 체제를 교란시키려는 저의가 담긴 것 아니냐는 의심만 받을 뿐이다. 대북전단 살포 등 북한이 주장하는 상호비방 문제도 이 고위급 회담에서 논의하면 된다. 

북한은 조건없이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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