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국제분쟁의 해결수단으로서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를 영구히 포기하고, 육해공군과 그외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 일본 헌법 9조, 이른바 평화헌법의 내용이다. 이 조항이, 아니 정확히 말해서 '이 조항을 지키는 일본국민'이 오는 10일 발표될 노벨평화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는 소식은 산뜻한 충격이다. 세계적 반전 평화단체인 '오슬로 국제평화연구소(PRIO)'의 크리스티안 베르그 하르프비켄 소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일본 헌법 9조는 2차대전후 동아시아 평화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조항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노벨평화상을 받는다면 일본과 중국의 영토분쟁 등 동아시아 안보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군비증강을 막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가장 유력한 후보 선정 이유'를 밝혔다고 한다. 

최근 영토·역사 갈등으로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면서 중동보다 더 심각한 세계의 화약고로 급부상하고 있는 이 지역에서 갈등의 중요 당사국 가운데 하나인 일본의 적극적 평화 추구 의지가 담긴 헌법 조항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교전권을 포기하고 군대보유를 사실상 금지하는 이 헌법 조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서슴지 않고 무력을 앞세우는 요즘의 국제정세에서 평화를 지키려는 노력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전세계 모든 국가의 헌법이 추구해야할 존귀한 가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PRIO의 가장 유력한 후보 선정 이유가 단지 역내 평화 때문이라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이 조항을 폐기하려고 시도하는 일본 아베 정권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더 클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집권후 전쟁을 할수 있는 '보통국가 일본'을 만들기 위해 부단한 시도를 해왔다. 급기야 지난 7월에는 국무회의를 통해 헌법 9조의 해석을 변경해 집단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동맹국이 공격을 받아도 자국이 받은 것으로 간주해 전쟁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해석개헌으로 불리는 이 조치는 전후 일본내 상식과 질서의 근간이랄수 있는 헌법 9조를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평화 헌법은 일본 입장에서는 2차 대전 패전국으로서의 멍에와 같은 것이다. 어찌 보면 일본 국민에게는 부끄러운 과거를 되새기게 하는 낙인일 수도 있다. 아베 정권이 헌법 9조를 개정하겠다고 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그 멍에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의 발로일 것이다. 
하지만 이 낙인을 부끄러움의 대상으로만 여긴다면 일본은 또다시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 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일본의 최근 우경화, 신군국주의화에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은 물론 일본내 뜻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는 이유다. 헌법 9조는 단순히 평화를 지키겠다는 것 외에도 일본이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자성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이를 개정하려는 것은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도 묻어 버리겠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일본헌법 9조가 노벨평화상 후보가 된 것은 일본 가나가와현의 한 전업주부 다카스 나오미 씨의 노력때문이라고 한다. 그녀는 헌법 9조 개정을 공약으로 내건 아베가 집권하자 '헌법 9조 노벨평화상 수상 운동'을 시작했다. 20대 시절 호주에서 유학했다는 그녀는 전쟁과 분쟁으로 인해 난민이 된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일본이 2차대전 이후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평화헌법 덕분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헌법 개정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평화상 수상 운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40여만명의 서명을 받아 이번에 후보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녀는 "만일 수상이 확정된다면 아베 총리가 일본 국민을 대표해 상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에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278명의 쟁쟁한 개인과 단체가 경합을 벌이고 있어 이 단체가 수상자가 될지는 불투명하다. 비록 수상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유력한 후보의 지위에 올라 수상여부가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 된 것 자체만으로도 그녀의 노력은 벌써 큰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기왕이면 평화헌법을 지키려는 일본인들이 최종 수상자로 선정돼 그녀의 바람대로 아베 총리가 오는 12월 오슬로에서 열리는 시상식장에 참석했으면 한다. 그와 그를 지지하는 일본 우익이 노벨 평화상의 무게를 인식하고 `강한 일본' 보다는 `평화를 지향하는 일본'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으면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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