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인 편집위원

우리 어머님은 올해 81세이시다. 강원도 산골의 횡성에서 4남매의 둘째로 태어나시었고, 6.25전쟁 때에 정(鄭)씨 집성촌인 평창의 ‘골미’라는 동네로 이주하셨다. 그 산골의 뒷산 등성에는, 나도 어릴 적에 외가댁에 갔을 때 올라가봤던, 큰 바위 굴이 우거진 숲속에 지금도 있는데, 아직도 그 굴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시곤 한다. 전쟁이 한창이던 때 손위 외삼촌이 북한군의 잡역꾼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그 굴에 숨어 지내셨다 한다. 외할머니랑 어머니가 매일 끼니 배달의 중책을 수행하여 북한군이 물러갈 때까지 용케 끌려가지 않으셨다고 한다. 또 한 이야기는, 지금은 황당하게 들리는 호랑이에게 혼쭐나셨다는 것이다. 동네 언니들이랑 몇 명이 봄나물을 뜯으러 뒷산으로 가셨단다. 나물이 있는 곳을 뒤지며 계속 산을 오르다 보니, 굴 앞에 고양이 새끼 몇 마리가 귀엽게 놀고 있더란다. 여식 애들답게 참 예쁘다며 쓰다듬어 주고 있을 때, 굴 위에서 ‘어흥’ 하는 호랑이 소리가 들리더란다. 굴 위를 올려다보니 어미 호랑이가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물바구니고 뭐고 다 팽개치고 엎어지고 자빠지고 하며 줄행랑을 하였단다. 더 신기한 것은 그 이튿날 일어나 보니 집집이 나물바구니를 제대로 찾아서 갖다 놓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호랑이가 참 영물이니, 그 때 조금이라도 새끼들에게 해코지하였다면 어찌되었겠냐는 반문을 지금도 하시곤 한다.

그런 산골에서 멀리도 못가시고 10여리에 살고 있는, 열 살 위인 강목수(선친)에게 시집 오셨다. 선친께서는 6남매의 막내이셨기에 바로 세간을 나셨고, 맏이인 내가 태어나자, 어머니는 괴나리봇짐을 머리에 이고, 선친은 솥단지를 걸머메고 나를 등목을 한 채 하루 만에 평창에서 지금의 내 고향인 여주 강천으로 2백여 리를 예전 산길로 이사 나오셨다. 여주에서도 풍족한 삶은 멀리한 채 근근득신 5남매를 키워오시던 중 80년대 후반에 선친께서 먼저 돌아가시고, 너무나 힘들게 살아 오셨다. 두부장수, 메밀묵 장수, 도자기 공장, 나무젓가락 공장부터 남의 밭일 등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힘들게 살아오신 억척스런 어머니시다. 우리 5남매가 한창 자라던 시절에는 매번 남한테 돈 빌리시느라 자존감은 생각도 못하고 살아내신 당신 인생이 내 만화경 속에 갇혀있다.

올 초에 퇴직한 나는 요즘 어머님이 혼자 계시는 시골집을 자주 찾는다. 어느 날 어머님께서 “애비야, 내가 요즘 가끔 앉았다 일어나면 정신이 없고는 하는구나.” 하셨다. 그러지 않아도 한번 종합병원에 모시고 가서 종합검진을 해야겠다고 계획하고 있었다. 말씀이 나온 차제에 매제가 근무하는 한남동의 종합병원을 예약하고, 모시고 갔다. 처음엔 1주일간 입원하시어 전체적인 검진과 검사를 하셨고, 얼마 전에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는 소견에 따라 어머님을 모시고 재차 갔다. 병원에 가면 매번 체중과 키의 측정치와 혈압 측정치를 기재하게끔 한다. 그 수치들을 보고는, 평소에 어머님을 모시고 다니면서도 느끼지 못하던 감정이 일시에 복 받혔다. 체중 48kg, 키는 148.9cm ? 어려서부터 봐오던 어머님은 항상 어른처럼 내 맘속에 있었는데, 어느 날 저리도 작아지셨는지? 그러지 않아도 몇 년 전부터 다른 남매들에겐 몰라도 맏이인 나에겐 가끔 어리광스런 말씀을 하시는 기분이 들곤 했는데, 이젠 현실로 내 앞에서 또 다른 어린이로 화(化)하셨는가? 그저 서글펐다. 그 뿐인가? 신경외과의 MRI 검사에 따른 정밀검사에서 어머님의 도파민 증상을 의사가 보호자인 우리들에게 보여주면서 설명할 때는 더욱 처절하였다. 정상적으로 토끼 두 마리가 마주한 듯 한 모습이 나타나야 하는 화면이 형체가 일그러져 있었다. 쉽게 말해 자율신경 통제가 힘들어지는 파킨슨병 초기라는 것이었다. 설명을 들으면서, 그 망그러진 모습을 직접 보면서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노쇠에서 오는 증상의 일종이라 치부한다 해도 괜히 어머님이 불쌍한 느낌이 휘몰아쳤다. 어머님 당신이나 자식들이나 모두가 말은 안 해도 어머님 건강에 대한 바램은 아마도 같을 것이리라.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다가 며칠간만 살짝 앓으시고 편안히 가시기를.

3개월 치의 도파민 치료약을 한보따리 조제해 귀가하면서 요즘 열심히 다시 읽고 있는 논어(論語)의 한 구절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를 섬기되, 은미하게 간(諫)해야 하니, 부모의 뜻이 내 말을 따르지 않음을 보더라도, 더욱 공경하고 어기지 않으며, 수고로워도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 (子曰, 事父母幾諫見志不從又敬不違勞而不怨. 里仁篇)' 그저 스스럼없다고 퉁명스럽게 어머니를 대하던 날들이 뇌리를 훑으니 내 도파민이 움찔대는 듯 아찔하다. 어머님 제발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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