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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인 칼럼] 모슬포 유채꽃-제주도 모슬포를 다녀오며 감상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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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0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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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인 편집위원

올해 우연히 제주도 모슬포를 다녀오면서 그간 잠자던 중년의 감성을 강하게 일깨워 내는 일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하굣길에 고향 이웃마을의 셋째 큰댁을 자주 들르곤 하였다. 그 당시만 해도 읽을거리가 없던 시절이라 나보다 7~8년 위인 4촌 형들이 가끔 사다 보는 주간 잡지를 보는 재미로 들르는 이유이기도 했다. 우리 선친은 백중숙계(伯仲叔季) 4형제 중 막내(季)이셨고, 그 당시 백부(伯父)께서는 평창에 사셨고, 중부(仲父)께서는 제주도 모슬포 제1훈련소에서 돌아가셨으며, 숙부(叔父)께서는 여주 우리 이웃마을에 사셨기에 가장 친한 친척집이라고 자주 숙부 댁을 찾곤 하였다. 하루는 여느 때처럼 무심코 숙부 댁에 들러 깊숙한 부엌에서 자욱한 연기 속에 식사를 준비하시는 숙모님께 꾸벅 인사를 하였다. 그런데 쳐다보시는 분은 파마머리만 숙모와 같았고 처음 보는 사람이어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그 분이 바로 모슬포 훈련소에서 돌아가신 중부님의 유복자이신 4촌 형님의 형수가 될 분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 얼마나 창피했던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형수님과 가끔 그 이야기를 하며 웃곤 한다.

1922년생이신 중부께서는 족보상으로는 1949년 음력3월에 제주도 제1훈련소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유복자이신 4촌 형님의 성장기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힘든 여정이셨고, 73세이신 이제는 무릎관절을 쓸 수 없어 수술까지 하셨다. 그 형님이 혼인하시기 전까지 중부님의 제사를 지내시던 선친의 모습이 아련히 되살아난다. 어려서 듣기로는 중부님께서는 제주도 훈련소 시절 하도 허기가 져서 바닷가의 복어 알이 먹음직스러워 동료들과 주워 드시고는 즉사하셨고, 인근 바닷가에 가매장 되셨다는 것이다. 강원도 산골에서 바닷가를 처음 경험하셨으니, 복어알이 뭔지도 모르셨을 것이다. 나중에 같이 입소했던 주변의 지인께서 대충 위치를 가르쳐 주고 사망일을 가르쳐주셨지만, 그 당시는 무섭도록 가난한 처지에 유해를 수습할 엄두도 못 내고 살아오셨던 것이다. 게다가 한국전쟁 당시 면사무소가 불타는 바람에 호적도 전소되었고, 재등재를 못하고서는 나중에 백부님의 3자로 기록되셨다 한다. 나중에 형님이 성인이 되어 유해라도 수습하려했지만 이미 그 지인도 돌아가시었으니 어쩌랴. 지금도 음력 3월 10일 기제사를 지내면서 묘지 없음을 항상 안타까워하신다.

올 3월 말에 나는 초등학교 동창들 40여 명과 함께 환갑여행을 제주도로 갔었다. 제주도를 일주하며 즐기던 중 나는 불현 듯 머릿속이 텅 빌 수밖에 없었다. 해병대 막사였던 건물을 지나면서 가이드의 말 한 마디가 있었다. 이 곳 모슬포의 벌판이 제1훈련소였단다. 선친과 내가 훈련받았던, 지금의 논산훈련소 이전의 훈련소라고 했다. 언뜻 중부님 일이 생각나서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던 유채꽃들이 왠지 숙연한 바람과 함께 중부님의 알지도 못하는 희미한 모습이 투영되었다. 순간 그 넓은 해안 어딘가에 잠들어 계실 중부님께 너무나 죄송스런 마음일 뿐이었다. 불귀의 객이 되셨으나, 호적정리를 제대로 못하여 국가유공자 위치도 못 찾은 채, 한 많은 세상을 다하신 중부님! 저승에서라도 부디 행복을 누리소서. 지금 자손들은 번창하여 증손자가 둘씩이나 됩니다. 그 때도 유채꽃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만큼이라도 앞으로는 더 이상의 유채꽃 흥취를 느끼지는 못할 듯합니다. 며칠 안 있으면 중부님의 기일입니다. 마음속으로나마 유채꽃 한 다발 바치오니 흠향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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