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령 편집위원

나라를 다스리려면 반드시 상벌(賞罰)을 활용해야 한다. 상벌을 사용해야만 백성들의 생각과 행동을 제한하고 그들의 힘을 끌어내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다. 상벌은 임의적인 것이 아니다. 나라, 백성, 통치자에게 이로운 것, 이것이 바로 상벌의 척도다.

정도가 지나쳐 공이 없어도 상을 주고 죄가 없는데 벌을 내리면 민심을 잃게 된다. 통치자가 민심을 잃으면 통치의 공고한 기초를 잃게 된다. 사람들도 잘 해보려는 의욕이 사라져서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통치자는 시비와 흑백을 가리기 위해 선을 권하고 악을 징벌한다. 옳지 않은 걸 옳다고 하고 흰 것을 검다고 하며 상 줄 사람에게 벌을 내리면 권선징악(勸善懲惡)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

상벌의 기준을 정하고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판단하여 공이 있으면 상을 주고 잘못이 있으면 벌을 내린다. 이렇게 하여 사람들이 상을 받기 위해 노력하게 하고 자신을 억제하여 형벌을 피하게 한다.

상을 받을 길이 없으면 사람들은 앞날을 암담하게 느낄 것이다. 본래 활달하고 공을 세우고 싶어 하던 사람도 자포자기(自暴自棄)하고 말 것이다. 형벌을 피할 길이 없으면 사람들은 걸핏하면 법을 어기고 위험을 무릅쓸 것이다. 그러면 스스로를 해칠 뿐만 아니라 통치자와 나라까지 해칠 것이다.

오왕(吳王) 부차(夫差)는 충성스러운 오자서(伍子胥)에게 자살을 명했고, 송나라 강왕(康王)은 곱사등이의 등을 갈라 안이 어떤 모습인지 보았다. 무고한 사람을 참살하면 사람들에게 상을 추구할 수도, 벌을 피할 수도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즉, 상을 추구할 수 있었다면 충성스러운 오자서가 왜 상을 받기는커녕 자살을 강요당했겠는가? 그리고 곱사등이의 튀어나온 등은 기형적인 신체일 뿐이다. 그게 무슨 죄가 된단 말인가?

현명한 통치자는 이 두 사람에게서 깊은 교훈을 얻어 부차, 강왕의 전철을 피해야 한다. 예컨대 장님을 넓은 평지에 머물게 한다. 그러면 자유롭게 다녀도 깊은 골짜기를 만날 리 없고 당연히 넘어져서 목숨을 잃을 일도 없다. 또한 우둔한 사람을 조용히 한 자리에 머물게 한다. 그러면 위험한 지경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으면 신하와 백성은 통치자에게 아무 원한도 품지 않을뿐더러 그의 은덕에 감사할 것이다. 상을 받을 수도, 벌을 피할 수도 있어야 사회 전체가 활발히 움직인다.

활쏘기는 과녁을 잘 조준해야 한다. 요행만 바라고 무턱대고 쏘면 혹시 명중되더라도 기술을 인정받기 힘들다. 통치자가 상벌을 집행하는 것도 활쏘기와 비슷하다. 반드시 대상을 잘 포착해야 한다. 갑이 지은 죄를 을에게 돌려 책임을 추궁한다면 화살을 과녁에 못 맞힌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것은 활쏘기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다. 활쏘기는 과녁을 못 맞혀도 아무 해가 없지만 상벌은 대상이 어긋날 경우, 죄 없이 벌을 받은 이들에게 원한을 사기 때문이다.

상벌에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상을 받는 사람은 상이 합리적이라고, 벌을 받는 사람은 벌이 당연하다고 느낀다. 법률로 엄격하게 상벌의 기준을 정하면 공로와 과오 모두 관련 법규에 맞춰지게 된다. 그 결과, 누구도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되고 의외의 변고가 일어날 가능성도 줄어든다. 하물며 상과 벌이 뒤바뀔 일은 더더욱 없다.

법에 의지하면 벌을 받은 자도 원한을 가질 수 없다. 법이 먼저 공포되고 범죄가 나중에 일어났다면 범법자는 벌을 받아도 누구를 원망하지 못한다. 또한 상을 받은 사람은 격려를 받아 더욱 열심히 일할 것이다.

상벌이 형평을 잃게 되는 핵심은 통치자가 주관적인 바람과 감정의 좋고 싫음에 따라 처리하는 데 있다. 기분이 좋으면 현명한 사람이든 형편없는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상을 주고, 화가 치밀면 품행이 바른 군자도 가만 놔두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상벌을 처리하면 현명한 신하는 해를 입고 소인은 이득을 보게 마련이다. 그리고 간신은 완전히 법을 깔보게 되어 반대로 통치자를 이용해 자기 잇속을 차릴 것이다.

잘 다스려지는 나라의 통치자는 개인적인 희로애락에 따라 상벌을 내리지 않는다. 형벌이 매서우면 어떤 간신도 감히 명령에 불복하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통치자는 나라를 망칠 리가 없으며 충신은 충성을 다하느라 목숨을 바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통치자와 신하 백성 모두가 평안히 살며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살맛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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