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택 편집위원

빠르고 쾌적한 경강선(여주-성남)은 그 옛날 추억과 낭만을 남기고 사라진 수려선 열차와 비교된다. 기성세대들에게 많은 추억을 남기고 사라진 수려선협궤열차(水驪線狹軌列車)!! 이동수단이 우마차나 도보로 다니던 시절에 수원서 여주를 오고가던 수려선 협궤열차가 회상된다.

수려선열차는 이동수단이 도보나 우마차에 의전할 시기 일본인 다가와죠지로(田川常治郞)사장과 전무 나이도신지가 본사를 수원에 두고 (주)경성철도회사를 설립 수원-여주간 73,3km에 협궤철도(狹軌鐵道)를 개설 1931년 12월 1일 열차를 개통하면서 각 지역민의 환영을 받았다.

수려선 열차는 여주 이천의 쌀 등 토산물 운송과 해산물을 반입하는 상업 전용 열차로 개통되어 41년 4개월간 운행하며 신기한 열차로 호기심에 찬 주민들이 몰려 관람하고 환영하는 등 애정과 아쉬운 추억의 향수를 남기고 여주에서 영원히 사라진 협궤열차다.

철로(鐵路)는 가늘고 폭도 좁아 경부선 열차에 비해 장난감 열차 같은 신기한 협궤열차를 일본은 현재도 운행한다. 경성철도회사는 남한강 수로운항 도선권을 같고 해산물과 소금, 석유 등 공산품을 반입해 원주와 충주까지 수로를 이용 판매를 해왔다.

열차가 사라진지 46여 년 만에 빠르고 안락한 전철로 개통되면서 관광객은 늘어나고 5일장이 활성화 되며 열차는 깨진 유리창에 갈라진 목판의자에서 푹신푹신한 의자에 자연의 풍치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통유리로 차창밖 아름다운 풍치를 볼 수 가 있다.

교통이 안좋을 때여서 인기는 대단했지만 해산물과 소금 석유 등 공산품 판매로 문명의 혜택을 받으면서 인기였고 열차를 본대로 자랑할 때는 더욱 신이 났고 징집 장병들이 태극마크 어깨띠를 두르고 수원 집결시 이용하여 기성세대들에겐 추억이 있다.

해방을 맞으며 수려선은 철도청으로 귀속되면서 적자 핑계만대고 개선은 안 되는 데다 연착은 잦고 차내는 악취가 심하다는 승객들의 항의지적을 받고도 외면은 계속되고 하루 10회를 운행하지만 보수를 안해 의자가 낡아 승객의 옷을 찢기가 일쑤였다.

시속10〜70㎞를 달리는 느림보 열차 화물 수송만 주력하고 승객탑승엔 대책 없이 적자만 내세우고 객차는 냄새 때문에 추워도 문을 열어놓고 다여야 하며 화물칸에 가마니를 깔고 조개탄 난로를 피우고 타니는 등 주민들의 안타까운 고통은 심했다.

수려선은 60년대가 호황시기였지만 딱딱한 나무의자가 깨지고 갈라져도 적자 운행이라며 수리를 안해 지적을 받았고 승객들 거의가 장사꾼들인데다 차내는 항시 땀내와 푸성귀 냄새가 어우러진 시큼한 냄새 속에 만나는 그들은 언제나 생기가 넘치었다.

열차안은 언제나 구수한 잡담이 이어지고 결행과 연착이 잦아 기다리는 승객들은 짜증나게 기다리다가 승무원을 만나면 반가운 듯이 "열차가 자다가 왔나" 하면 승무원은 "하도 힘이 들어 조금 자다 왔지" 하고 되받아주는 인사로 차안은 늘 화기애애해진다.

까만 연기를 뿜으며 칙칙폭폭 하고 달리던 열차!! 1972년 4월 1일 여주역은 주민 철도관계자들의 침통하고 안타까운 고별인사를 받고 화통엔 원형화환과 ‘여주야 잘 있거라’ 현수막을 달고 힘찬 석별의 기적소리를 남기고 종별를 고하고 떠나간 열차….

경강선을 보면 여주서 사라진 수려선이 회상된다. <사진제공=여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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