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과중한 사건처리 부담을 줄이고자 상고법원을 설치하는 방안이 24일 공개됐다. 대법원은 정책법원으로서의 기능에 집중해 사회적·법률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을 심판하는 역할을 맡고 일반 상고사건은 상고법원을 서울에 설치해 전담 처리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한승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은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상고제도 개선 공청회에서 이 같은 상고법원 도입방안을 발표했다. 대법원이 맡는 사건이 너무 많아 충실한 심리가 힘들고 최고법원으로서 역할에도 어려움을 겪는 점을 해결해 보자는 것이다. 

대법원 사정을 생각할 때 상고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상고사건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2012년 기준 상고사건은 3만5천776건으로 10년 전인 2002년의 1만8천600건과 비교해 거의 배 수준으로 증가했을 정도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이 1인당 연간 3천여건을 처리한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충실한 사건 심리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밀려드는 사건 처리에 허덕이느라 국민 관심이 많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사건이라도 전원합의체에 올리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2012년에 상고사건 중 전원합의체에서 처리한 사건 수는 28건으로 0.1%도 안됐다. 이렇게 보면 상고심 제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이유가 한둘이 아닌 셈이다.  

대법원이 마련한 개편안은 상고법원을 설치해 놓고 법령 해석의 통일이나 공적 이익과 관련이 있는 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맡고 나머지 일반 사건은 상고법원이 담당하는 방식이다. 어디서 처리할지는 대법원이 모든 상고사건을 접수해 심사를 통해 결정한다. 다만 공직선거법에 의한 당선무효 사건, 사형이나 무기징역이 확정될 수 있는 형사사건, 군사법원 사건 등은 필수적 심판사건으로 지정해 별도 심사 없이 대법원의 심판을 받게 된다. 원칙적으로는 상고법원에서 판단이 내려지면 불복할 수 없지만 헌법 위반 또는 명령·규칙·처분의 위헌·위법 판단이 부당한 경우, 결론이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대법원에 다시 심판을 청구하는 특별상고 제도도 운영된다. 

대법원의 고충을 생각할 때 이번 개선안은 많은 고심과 검토 끝에 나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상고법원이 가진 몇 가지 문제점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헌법상 최고법원은 대법원인데 국민이 상고법원을 최고법원처럼 받아들이고 판결에 쉽게 승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법원과 상고법원이 맡는 사건을 나누는 것을 놓고도 논란이 예상된다. 필수적 심판사건이 아닌 경우에는 자의적 판단이 작용할 수밖에 없어 누구는 대법원에서, 누구는 상고법원에서 최종심을 받느냐는 형평성의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특별상고의 경우 예외적인 경우에만 이뤄진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4심제가 되는 셈이어서 부작용이 우려된다. 이런 점에서 상고법원 설치 외에 대법관 수를 늘리거나 하는 다른 방법이 없는지 더 심사숙고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1,2심 재판을 강화하는 등 상고율을 낮추는 방안도 함께 추진해야 할 과제다. 상고법원 도입에 앞서 국민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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