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화근을 만들지 마라

“무릇 믿는 자의 말만 듣다가 아들과 아비가 남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는 ‘불참지환(不參之患)’ 곧 두루 살피지 않아서 생긴 재앙이다.“

통치자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서 신중하게 살피지 않으면 멀게는 나라를 해치고 가깝게는 자신을 해친다. 제갈량(諸葛亮)은 군대를 일으켜 북벌을 떠나기 전, 주관을 갖고 여러 의견을 구해 그 중 정확한 것을 택해 시행하면 틀리는 일이 없을 거라는 글을 군주 유선(劉禪)에게 올렸다.

노나라의 승상으로서 독재를 휘둘렀던 숙손(叔孫)은 수우(豎牛)라는 자를 총애했다. 그런 탓에 수우는 항상 멋대로 숙손의 이름을 빌어 권력을 남용하곤 했다. 숙손에게는 임(壬)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수우는 그를 죽이고자하는 마음을 품었다. 어느 날 그는 임과 함께 노나라 군주에게 놀러갔다. 그때 군주가 임에게 옥팔찌를 상으로 내리자 임은 그것을 차지 못하고 숙손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달라고 수우에게 부탁했다. 이에 수우는 임에게 숙손이 팔찌를 차는 걸 허락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얼마 후, 수우가 숙손을 찾아가 말했다.

“왜 임이 주군을 뵙도록 하지 않습니까?”

숙손이 말했다.

“그 애가 주군을 뵐 필요가 뭐가 있나?”

수우는 임이 이미 군주를 만난 적이 있으며 옥팔찌를 하사받아 차고 있다고 말했다. 숙손이 당장 임을 불러 만나보니 과연 수우의 말 그대로였다. 불같이 화가 난 숙손은 임을 죽이라고 명했다.

수우는 또 임의 형인 병(丙)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했다. 숙손은 병을 위해 종(鐘)을 주조하게 했는데 병은 감히 그 종을 칠 수가 없어서 숙손에게 물어봐달라고 수우에게 부탁했다. 수우는 또다시 간계를 부려 숙손에게 물어보지도 않고서 허락을 얻었노라고 병을 속였다. 그래서 병은 마음 놓고 종을 쳤고 이에 화가 난 숙손은 그를 추방시켜 버렸다. 나중에 수우는 숙손에게 거짓으로 병을 위해 용서를 빌었고 숙손은 그에게 병을 불러오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그는 병을 부르지도 않고서 병이 화를 내며 오지 않으려 한다고 고했다. 숙손은 사람을 보내 병을 살해했다.

숙손은 두 아들을 죽인 뒤, 자신도 병으로 몸져누웠다. 수우는 그의 측근들을 따돌리기 위해 그가 소란을 피하려고 자기 한 사람만 시중들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밥조차 주지 않고 그를 굶겨 죽인 뒤, 몰래 금은보화를 챙겨 제나라로 줄행랑을 쳤다.

통치자는 신임하는 부하의 말이라 해도 반드시 잘 살피고 검증해야 한다. 그들의 말이 전부 정확하고 일관된 금과옥조일 리 없기 때문이다. 통치자가 살피고 검증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 돌이킬 수 없는 화근을 만들게 된다.

피는 결코 물에 녹지 않는다.

재상은 큰 고을에서 나오고 맹장(猛將)은 병사들 사이에서 나온다. 공허한 말은 실제와 다르며 공허한 말을 중시하는 것보다는 실제를 중시하는 것이 낫다. 검 끝이 날카로운지 알려면 물건을 잘라보고, 말이 좋은지 알려면 수레를 끌고 달리게 해본다. 또한 관리가 우둔한지 총명한지는 공을 세울 수 있는지 살펴본다. 즉, 실천은 사물을 검증하는 기준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검증하는 기준이다.

천리에 걸친 큰 반석(盤石)을 가진 사람을 부자라고 할 수 없는 건 반석이 크지 않아서가 아니다. 반석 위에서는 곡식이 자라지 않으므로 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형 백만 개를 가진 사람을 힘이 있다고 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형의 수가 적어서가 아니라 나무인형 따위는 싸우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돈을 뿌려 관직을 사는 상인들은 농사를 안 짓고도 밥을 먹으니 수확을 못하는 반석과 비슷한 자들이다. 공도 없이 명예를 누리는 유생(儒生)과 협객도 실제적인 일은 전혀 하지 않으므로 저 나무인형과 다를 바 없다. 통치자가 이런 유사성을 깨닫지 못하고 표면적인 현상만 중시하면 가상(假想)에 현혹되고 만다.

피는 피고 물은 물이다. 가짜는 결국 가짜일 수밖에 없다. 공허한 말은 아무리 화려해도 반드시 본색을 드러낼 때가 있다. 그래서 크게는 국가, 작게는 한 부문이나 가정에 이르기까지 혹시 공허한 논의의 피해를 겪게 되더라도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정력, 금전을 대가로 치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잘못해서 파멸의 위기에라도 빠지면 뒤 늦게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요즘 국가의 심장부 청와대 근무 직원들의 기강해이 사건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직속 상사들의 부하들을 두루 살피지 않은 관리 감독 의 부실과 직무태만에서 비롯된 재난이기에 말이다. 현대판 불참지환(不參之患)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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