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편집위원

주일날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갔다가 / 미사 끝나고 신부님한테 인사를 하니 / 신부님이 먼저 알고, 예까지 젓 사러 왔냐고 / 우리 성당 자매님들 젓 좀 팔아 주라고 / 우리가 기뻐 대답하기를, 그러마고 / 어느 자매님 젓이 제일 맛있냐고 / 신부님이 뒤통수를 긁으며 / 글쎄 내가 자매님들 젓을 다 먹어봤냐고 / 우리가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 / 그도 그렇겠노라고 -정희성 시인의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가서’ 전문

광천역에 내리면 오른편에 소리꾼 장사익의 ‘찔레꽃 노래비’가 있다. 그 옆에 젓갈을 숙성시키는 토굴 모형이 있고 그 맞은편에 재래시장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가겟집마다 젓통을 내놓아 젓 냄새가 진동하는 광천 젓갈시장이다. 이맘때면 집집이 약속이라도 한 듯 연례행사로 치르는 대대적인 김장이 시작된다. 젓 얘기 몇 자락 더 깔고 싶어도 지면이 너무 짧다. 김장에서 빠질 수 없는 품목은 역시 젓갈이다. 새우젓, 어리굴젓, 창난젓, 조개젓, 꼴뚜기젓, 밴댕이젓, 황새기젓 등 종류도 많다. 새우젓도 추젓, 오젓, 육젓으로 나눈다. 광천젓은 오월에 잡은 새우로만 담근단다. 그래서 그런지 이맘때쯤이면 광천 젓갈시장은 발 디딜 틈이 없이 북적거린다.

그곳에서 나이 지긋하신 아저씨가 오래도록 아주머니의 젓을 바라보신다. 작심한 듯 침을 꿀꺽 삼키며 이 젓 저 젓 두 손가락으로 집어 맛보더니,

“이 젓 누구 젓이여?”

“내 젓인디유, 맛 좋지유.”

이때, 옆집 젊은 새댁이 얼굴을 붉히면서,

“아저씨! 내 젓 좀 맛보세유.”

흘깃 그쪽을 쳐다보신 아저씨가 보시기에 살이 통통하고 뽀얀 게 보기에도 좋아 보였다. 체면 불고하고 아주머니 젓통에서 새댁의 젓통으로 옮겨 맛을 보는데, 새댁이 재차 말을 덧붙인다.

“서울에서 내려온 젊은 손님들은 내 젓만 찾는당깨요.”

올해도 어김없이 어머니께서 하신 김장을 공짜로 얻어먹게 생겼다. 아내가 이미 절임 배추 20kg을 예약해 두었는데, 어머니께서는 내가 좋아하는 총각김치와 물김치까지 담가서 둘째 동생 차에 실어 오시겠다는 전갈이다. (이 얘긴 어머니께는 끝까지 비밀로 해야겠지만, 요즘에는 어머니 손맛보다 아내가 내 입맛에 딱 맞는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함께 김장하고 나누는 ‘김장 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2013년 등재됐다. 요즘에는 집집이 김치냉장고 없는 집이 없지만, 옛날에는 장독을 땅에 묻고 그 속에 김치를 저장했다.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므로 오랫동안 맛있는 김치를 꺼내먹었다.

김장은 겉보기보다 공정이 복잡하고 까다롭다. 어머니는 배추를 절일 때는 한밤중에 일어나 뒤집어주신다. 이런 공력이 들어야 배추가 골고루 잘 절여진단다. 김치를 만들기 위한 재료도 한둘이 아니다. 배추와 젓갈은 물론 총각무, 홍갓, 대파, 쪽파, 생강, 다진 마늘, 양파, 소금, 고춧가루, 매실청 등등. 쑤어놓은 찹쌀풀이 식는 동안에 갖가지 양념소를 만들고 무를 채칼에 비벼 무채를 만든다. 김장하면서 수육과 생굴을 절임 배추에 얹어 싸 먹는 쌈 맛은 그야말로 둘이 먹다가 셋이 죽어도 모를 일미다. 김장이 끝난 후 배추, 무, 오이 등을 넓적하게 썰어 남은 재료를 몽땅 넣고 만든 섞박지 혹은 지레김치도 입맛을 돋우는 별미다.

세상이 쌈 싸 먹듯 급박하게 돌아간다. 뭐가 뭔지 도대체 감이 잡히질 않는다. 어쩌면 시대의 흐름에 나만 뒤처졌다는 자격지심이 들 때도 있다. 하던 일을 포기하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이번이 절호의 기회다. 내 사전에 포기라는 말은 없다. 포기라면 두 동강으로 쩍 빠개서 노랗게 알밴 속살에 새우젓 얹어 쌈 싸 먹는 배추 한 포기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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