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자의 말에 믿음이 없으면 위신을 잃게 된다.

이정랑 편집위원

서주(西周)가 멸망한 주요 원인은 서주 말기 몇몇 통치자들의 생활이 음탕하고 무도했으며 정치적으로도 우둔하여 혼란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잔혹하고 어리석은 통치자가 계속 이어지면서 사회문제가 누적되었고 인심은 뿔뿔이 흩어져 수습할 방법이 없었는데, 이는 고대 중국의 전제군주 제도의 필연적인 결과다.

왕조가 세워질 때마다 개국 군주나 초기의 몇몇 군주는 전 왕조의 멸망에서 교훈을 얻거나 행동을 바르게 하여 정치를 잘하고 심혈을 기울여 나라를 다스렸지만, 태평한 날이 오래 지속된 후 나타난 군주들은 자연히 개인의 지나친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방탕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습되는 전제군주제하에서는 왕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제멋대로 행동하여 서슴없이 악행을 저질렀다.

그래서 역대 왕조는 군주의 음탕하고 무도한 폭정 때문에 망했고, 이는 뛰어넘을 수 없는 역사적 규칙이 되었다. 직접적으로 유왕(幽王)을 패망으로 이끈 도화선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봉화(烽火)로 제후들을 희롱(戱弄)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신후와 태자를 폐위(廢位)시킨 것이다.

속담에 군주는 농담(弄談)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군주의 말에 믿음(信義)이 없다면 위신(威信)을 잃게 된다. 또한 법령과 정책을 어린애 장난처럼 한다면 신하는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할지 몰라 자연히 정치는 혼란해 진다. 그리하여 조정의 신하와 백성들의 원망과 분노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유왕이 봉화로 병사들을 모아 장난친 일은 세계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유왕의 통치가 무책임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사직을 장난으로 여겼으며 근본적으로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것인가를 생각지도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군주가 어찌 강과 산처럼 무사할 수 있겠는가?

그런대 말이다. 이러한 일이 기이하게도 한국에서 버젓하게 그것도 국가를 대표한다는 대통령이란 사람들에 의해서 저질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치자가 말을 삼가지 않고, 신중하지 못하게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내뱉는 것은 인심을 잃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인간의 집단생활에서 자신의 몸을 제대로 지키려면 말을 신중하게 삼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도자가 말을 삼가고 신중하게 말을 하는 것은 수양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자세인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본능적인 행위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생물의 한 종(種)에 지나지 않는 인간도 먹고 차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만전술을 쓰고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쉬운 방법이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벙어리가 되기 전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후천적으로 교육돼야 하는 도덕적 개념일까?

도덕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인지, 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요즘 한국사회처럼 거짓말이 횡행하는 곳도 찾기 어렵다고들 한다.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이 자기를 뽑아준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능사로 삼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한다. 유구무언(有口無言)이란 뜻이다.

‘덕위병시(德威幷施)’는 통치효과를 대대적으로 높일 수 있는 지혜이다. 이른바 통치효과란 지도자가 국민을 통솔하면서 개인적 특권이나 조직이 부여한 권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과 지도와 영향력으로 국민들이 원하는 바를 통일시켜 집단의 목표를 실행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지도자들은 고상한 도덕적 풍모와 훌륭한 사상적 품격, 그리고 높은 명망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음으로써 ‘덕위병시’의 통치효과를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위신’이란 지도자의 덕 · 지식 · 재능 · 학력 등 여러 방면의 우수한 자질에서 나온다. 그것은 지도자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과 신뢰라는 기초 위에서 생산되어 상대로 하여금 통제와 지배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하는 심리적 요소로 작용한다. 그것은 지도자 개인의 내적 잠재력과 인격적 특징을 통해 자연스럽게 침투되는 사상 의식 · 도덕적 품격 · 생활 방식 · 지식 · 재능 · 감정 등 여러 가지 요인에 힘입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지도자는 위신과 명망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위엄’도 있어야 한다. 국민들로 하여금 경외심을 갖게 하는 것은 심리학적 각도에서 말하자면 존경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갖도록 하는 것이다. 덕을 베풀 때는 너그러움의 폭이 넓어야 사람을 깊게 감동시킨다. 위엄을 과시할 때는 그 호령이 산과 같이 무게 있고, 말을 꺼냈으면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 두 가지를 결합해야 비로소 정상적인 통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지도자들은 일이 닥치면 적시에 유효적절한 방법을 생각해 내고 아울러 국민들의 사상 변화(심리 변화)를 잘 살펴서,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마찰이나 의견 차이 · 심리 충돌 따위를 해소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을 찾아냄으로써 전체 국민들의 존경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곧 국민을 통솔하는데 필요한 실제적인 권력을 형성한다. 이 ‘실제 권력’은 조직 및 국민의 활동 심리와 행위를 자극하는 영향력 있는 요소다. 그것은 뜻하지 않은 복잡하고도 강렬하게 소용돌이치는 상황에 부닥치면 특히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이런 권력이 없으면 직무와 관련된 권력을 획득하고 장악하는 객관적 기초를 잃게 된다. 권력 없는 지도자가 그 직책과 사명을 실현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더구나 급박하고 절박한 현실타개를 변명과 거짓말로 어물쩍 넘기는 그러한 지도자, 국가적 중대사안에 불통과 아집 독선과 비리 부정부패로 얼룩이진 사람들이 책임회피만 일삼는다고 문제가 해결 되겠는가. 그러한 통치자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그들보다 훨씬 능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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