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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인 칼럼] 귀거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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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0.0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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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청 세정과장 강구인

도연명은 4세기 경 중국 진(晉)나라 사람으로 귀거래사 작품이 유명하다. 귀거래사는 나와는 꽤 인연이 있는 문장이다. 내가 스물두 살 군 입대 전, 집에 있는 송판조각으로 직접 만든 두레반상에 써가며, 불안한 마음을 다잡았던 문장이기도 하다. 귀거래혜(歸去來兮, 돌아가노라)로 시작되는 첫 장은 도연명이 관리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읊었는데, 현재 베이비부머들의 처지와 같을 것이다. 둘째 장은 집에 도착한 기쁨을 노래하고 있는데, 아직 내가 겪지 않은 부분이지만 공감이 간다. 셋째 장의 고향 생활 및 고향철학과 마지막 장의 자연섭리에 몸을 의탁해 살아가려 한다는 자신의 다짐과 소감은 내도 따라가고픈, 아니면 이 바쁜 시대의 7080세대들의 로망이 아닐까 한다. 歸去來兮! 돌아가노라 !

뒤늦게 대천시청에서 공직에 첫발을 내딛고는 고향 가까운 용인으로 와서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며 25년 살아왔다. 경전철을 타고 가듯, 차창 밖으로 한 번 지나간 파노라마로 저장된 내 시간과 여정은 되돌릴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종착역에 가까워 오니 그저 부스스 자리를 털고 내릴 준비를 할 뿐이다. 다음 목적지를 향해 종착역을 환승역으로 삼아 바쁘게 가는 저 승객들이 나의 또 다른 준비를 자극할 뿐이다.

여주 남한강변 이호리. 내 고향이다. 벌거벗고 뛰놀던 남한강가 새나루 위로는 강천보가 세워졌고, 말 많은 4대강 정리와 전원주택 등으로 고향의 정취는 세월 따라 강물 따라 빛이 바랬지만, 어려서 친구들과 노 젓던 향수(鄕愁)만큼은 오히려 발동기를 단 듯 힘차게 남한강을 거슬러 오른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40여년을 타관 생활한 나에게도 수년전부터 어느덧 초로(初老)의 수구초심(首丘初心)이 슬며시 머리를 쳐든다. 현재도 고향땅 정든 문지방을 지키고 계신 정정하신 팔순 노모(老母)를 모시고 여생을 살리라고. 귀향(歸鄕)의 명분은 일단 만든 셈이다. 歸去來兮 !

내가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까지 자란 고향 여주(驪州)에는 지금도 많은 추억이 남아있고, 팔순 노모께서 이제나저제나 자식 오길 기다리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주의 유적지인 세종대왕(世宗大王) 영릉(英陵)은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지만 우리가 중학교시절에는 학교인근에 위치한 봄가을 단골 소풍장소였다. 멋도 모르고 봉분 꼭대기에서 미끄럼도 타고, 제절에서는 텀블링을 비롯한 장기자랑도 하던 것이 이제는 금지된 추억이 되었다. 그런 성군(聖君) 세종대왕과 훈민정음의 주제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분위기가 갖추어진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영릉의 세종대왕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훈민정음 책자 내용을 잘 가르쳐 글로벌한 청소년들이 될 수 있도록 함이다.

훈민정음이 그저 영어 알파벳 26자 쓰기만 하면 써지는 그런 단순한 글이 아니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서예작품으로 써볼까 하면서 사서 보게 된 책자를 깊이 공부하다보니, 놀라울 정도의 우리겨레 전통의 숨결이 배어 있다는 것이다. 서문의 애민(愛民)내지 편민(便民)정신이나 우리겨레의 창조정신은 물론이거니와 제자해(制字解)부분을 공부하면서는 너무 많은 것을 느끼는 희열에 빠지기도 했다. 십 년 전부터 공부하고 있는 현공풍수지리에서 배운 동양철학의 음양오행과 천문별자리 28수와 주역까지 아우르는, 즉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전통사상을 그대로 녹여내 놓은 것이 훈민정음이라는 것을 알고 너무나 흥미가 당겼다. 이런 내용을 꼭 고향에서 자라나는 후배들과 같이 하고 싶다.

일간경기  ilgang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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