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편집위원

아내는 필자를 “초딩서방”이라 부른다. 궁색한 변명은 하지 않겠다. 내가 나를 봐도 그런 소리를 들어도 싸다. 뒤늦은 감은 있으나 솔직한 ‘자아비판’으로 상쇄하고자 한다. 먼저, 결혼 후 아내와 함께 시장에 나가본 게 채 다섯 손가락도 못 꼽는다. 겉보기에는 세상만사를 다 아는 체하며 살았지만, 아내가 보기에는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팔불용이다. 특히, 먹고사는 시장 정보에는 진짜로 문외한이다. 문외한이라기보다는 초딩 4학년 수준만도 못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두 번째는 금주·금연을 실천으로 옮긴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주전부리가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도 대부분 고급만 골라서 먹기 때문에 비용이 만만치 않다. 아이들 간식비나 과잣값 정도로 생각하다가는 큰코다친다. 한술 더 떠서 직업 특성상 하루걸러 하루씩은 도시락을 싸간다. 특별한 날이나 회식 때 빼고는 식당에서 사 먹는 밥은 거의 먹지 않는다. 필자의 까탈 때문에 밥 치다꺼리하느라 아내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래서 아내가 “초딩! 초딩!”하며 놀려대도 할 말이 없다.

세 번째는 유난히 음식을 가려먹는 편이다. 그렇다고 많이 안 먹는 게 아니다. 남들이 맛있다고 쩝쩝거리는 젓갈류나 김치처럼 맵거나 짠 반찬이나 기름에 넣고 튀긴 음식은 거의 손도 안 댄다. 싱거운 것을 즐기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 당연히 반찬을 많이 먹게 된다. 밥 한술에 반찬 서너 가지 이상을 넣고 씹는다. 밑반찬으로 나물류, 생선, 멸치볶음, 콩자반, 달걀찜, 브로콜리, 샐러드는 식탁에서 빠지면 안 된다. 물론 돼지고기와 소고기도 번갈아 가며 거의 매일 먹는다.

네 번째로 필자는 걱정이 별로 없는 편이다. 큰 걱정은 아예 피하고 될 수 있으면 속 편히 산다. 그렇다고 한가하지도 않다. 돈벌이가 안 되는 일복이 많아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을 정도로 무척 바쁘게 움직인다. 10여 년 전까지 지방에 있는 대학에서 세상을 다 꿰뚫고 있는 듯이 온갖 아는 체는 다하며 학생들 앞에서 강의도 했다. 이따금 외부의 사회단체 등에 강사로 초청되어 필자보다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 앞에서도 흰소리해대며 별별 것을 다 까발렸다. 그때는 진짜 나라 돌아가는 꼴이 말이 아니라서 진심으로 걱정이 돼서 이마에 내 천(川)자가 깊게 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필자를 “초딩! 초딩!”하며 얕잡아 놀려댄다. 요즘에 와서 되생각하니 틀린 말이라고 반박하지는 못하겠다. 필자가 시시때때로 속을 썩인 탓에 연하인 아내가 가끔은 누님으로 보일 때가 있다. 요즘 장족의 발전이 거듭되는 사건으로 아내의 설거지를 돕는 모습이 이미 SNS를 통해 동영상으로 공개되어 체통이 이미 무너졌으니 구구한 설명은 이하 생략이다. 이상으로 똥오줌 못 가리면서도 남북통일 걱정밖에 없는 초딩서방의 자아비판 끝.

만나는 사람마다 올여름은 너무 힘들었다고 말한다. 늦여름에 잔뜩 지레겁 먹었는데 얌전하게 태풍이 지나갔건만 여기저기서 땅이 꺼진다. 서울에서는 유치원 건물이 무너질 뻔했단다. 천지사방에서 “못 살겠다” 내뿜는 한숨 소리로 난리들이 났다. 우리나라보다 더 난리 난 곳은 우리가 섬나라라고 놀려대던 일본이다. 지진도 그러하지만 ‘태풍’ 하면 ‘일본’이 아니던가. 뒤늦게 닥친 가을 태풍과 폭우로 산사태가 나 눈 뜨고 차마 못 볼 지경이다. 한두 번 겪는 사태도 아니고 이미 이골이 난 그들이라서 의외로 침착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결실의 계절이다.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 가을이 왔건만, 전혀 가을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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