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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이야기] 수원 명예의 전당 8인이종학 최종건 최종현 안점순… “잊지 않겠습니다”
  • 김희열 기자
  • 승인 2018.09.0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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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가 지난 14일 시청 대강당에서 ‘수원시 명예의 전당 헌액식’을 열고 8명을 헌액했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인물은 독립운동가 김세환·이선경·임면수·김향화, 서지학자 이종학, 기업가 최종건·최종현, 평화활동가 안점순 할머니 등이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기념사에서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은 수원의 명예를 드높인, 공적으로 귀감이 되는 분들”이라며 “명예의 전당은 우리 시민의 자긍심을 높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헌액식 후에는 시청 본관 로비 벽면에 설치한 명예의 전당 제막 행사가 이어졌다. 명예의 전당에는 헌액자들의 사진과 간략한 생애·경력·업적 등이 새겨진 동판을 부착했다.

수원시는 홈페이지(http://www.suwon.go.kr) 헌액자의 사진과 생애를 볼 수 있는 ‘사이버 명예의 전당’을 운영한다. 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8인의 삶을 자세하게 소개한 책 ‘수원을 빛내다 명예를 높이다’를 출간했다. 이날 헌액식에는 임면수 선생의 손자, 최종건 전 SK회장의 아들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이종학 선생의 처와 딸 등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의 후손(가족)이 참석했다. 지난회 독립운동가 4명에 이어 이번에 각 분야에서 수원을 크게 빛낸 위인 4명을 싣는다.

◆최종건 최종현 형제, 수원서 탄생 SK를 세계 기업으로

수원SK 최종건 생가

SK그룹 창업주인 최종건(1926~1973) 전 회장과 그의 동생 최종현(1929~1998) 전 회장은 수원의 대표적인 기업가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표적 기업의 하나인 SK 그룹은 수원에서 시작됐다.

최종건 전 회장은 1953년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수원 평동에 선경직물(현 SK네트웍스)을 설립했고, 수원은 SK그룹에게 고향과 같은 곳이다. SK그룹은 1939년 조선의 선만주단과 일본의 경도직물이 합작해 만든 선경직물로부터 시작됐다. 1943년 선경직물은 경기 수원시에 공장을 세웠다. SK그룹의 창업자인 최종건 회장은 1944년 선경직물 수원공장 견습 기사로 입사했다. 1946년 최 회장은 공장 생산 부장으로 임명됐다. 해방 이후 일제가 쫓겨난 뒤 일본인이 소유했던 재산과 기업은 정부에 귀속됐다. 선경직물도 1948년부터 정부가 관리하기 시작했다. 1956년 최 회장은 선경직물을 인수했다. 설립 당시 자본금은 500만 환이었다. 1962년 선경직물은 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5000만원으로 늘렸다. 8월 무역업을 목적으로 하는 선경산업을 설립했다. 이 해 11월 미국 유학을 마친 최종건 회장의 동생 최종현 씨가 회사 부사장으로 취임했다. SK그룹은 1962년 2대 최종현 회장이 선경직물 부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가파르게 성장했다. 최종현 회장은 오늘의 SK그룹이 있게끔 도약을 다진 인물이다.

최종건 회장은 1973년 겨우 48세의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경영권을 동생인 최종현에게 물려줬다. 최종현 회장은 통신, 에너지, 유통 등을 망라하는 오늘의 SK그룹으로 키워냈다. 최종현 회장 사망후 아들인 최태원 회장이 SK그룹 수장이 되었다.

창업주 최종건의 부친은 최학배로 화성 팔탄 출신이었다. 결혼하면서 수원시 평동에 자리잡는다. 그는 평동에서 대성상회라는 미곡상을 하며 돈을 모은다. 광복후에는 수원시의원을 지냈다. 수원시 평동주민센터 바로 옆에 SK그룹 창업주인 최종건의 생가가 있다. 수원역에서 택시로 불과 5분정도 거리다. 최종건 생가는 SK그룹의 모태인 선경직물이 출범한 곳이기도 하다. 1970년대만 해도 이곳은 수원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중 하나였다. 아침 저녁이면 출퇴근 하는 2000여명 선경직물 직원들로 2차선 도로가 가득 찼다. 그 당시는 선경직물이 수원을 먹여살렸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1980년대 섬유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선경직물 공장은 오래전에 가동을 멈췄고 극히 일부만이 평동에 있다. 직물기 일부는 대구 섬유단지와 중국, 동남아 등으로 뜯겨져 팔렸다고 한다.

생가는 대지 390여평에 자 한옥 한 채다. 대청마루와 안방에는 자개장, 재봉틀 등 최종건 부부가 사용했던 생활용품 몇점이 전시되어 있다.SK그룹은 1995년 선경도서관을 건립해 수원시에 기증하기도 했다.

지난달 SK그룹은 고 최종현 SK 회장 20주기 추모식을 가졌다.

◆서지학자 이종학, 독도와 일본 왜곡 자료 수집

삼국접양지도

서지학자 사운 이종학 선생(1927~2002)은 일제가 왜곡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고 특히 수원화성 및 독도와 관련된 수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관련 자료를 수원시와 독도박물관에 기증했다.

1927년 1월16일 경기 화성군 우정면 주곡리에서 태어났다. 독도박물관 초대관장과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초대소장을 지냈다. 40여 년에 걸쳐 독도와 충무공, 그리고 일제 한국강점기를 중심으로 역사연구를 진행했으며, 수집한 자료 수천점을 독립기념관, 동학혁명기념관, 현충사 등에 기증했다. 또 방대한 자료집을 발간하여 국내외에 배포하는 등 독도 영유권 확립과 일제의 불법 강점을 알리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는 역사를 정신의 옥토를 여겼으며 스스로 역사를 김매김 한다는 뜻에서 호도 사운(史芸)으로 정했다고 한다.

평생 수집한 독도 관련 사료의 기증은 울릉군 독도박물관 건립에 결정적인 바탕이 됐다. 평양에서 ‘일제의 조선강점 불법성에 대한 남북 공동 자료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종학 선생 덕분에 수원성 대신 축성 당시의 이름인 화성을 다시 찾게 됐다. 독도가 우리 땅임일 알리는 각종 사료를 풍성하게 확보했다. 수원 광교박물관에 초대 독도박물관장이었던 '사운 이종학'관이 있다.

◆위안부 피해 알린 안점순 할머니

안점순 할머니

올해 3월 30일 별세한 안점순(1928~2018) 할머니는 14살 되던 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3년여 동안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1990년께 조카(오빠의 아들)와 수원으로 이사 왔다. 1993년 8월 막내 조카딸 신고로 끔찍했던 ‘위안부’의 기억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후 할머니는 수요집회, 아시아연대회의 등에 참여해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하며 ‘일본군 성노예 문제해결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4년 5월 수원 올림픽공원에 평화비(평화의 소녀상)가 세워진 후에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 지원 단체인 ‘수원평화나비’와 함께하며 ‘평화 활동가’로 나섰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후에는 ‘합의 무효’를 외치며 일본 정부의 ‘위로금’ 수령을 거부했다. 지난해 3월 8일에는 독일 레겐스부르크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순이) 제막식에 참석했다. 레겐스부르크 소녀상은 유럽에 처음으로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이었다.

안 할머니와 꾸준히 인연을 이어 온 수원시는 할머니의 삶을 다룬 헌정 영상 ‘안점순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제작해 공개하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세상을 떠난 안 할머니는 1928년 서울 마포에서 태어나 1941년 중국으로 끌려가 1945년까지 위안부 피해를 봤다.

1946년 귀국한 안 할머니는 강원도와 대구 등에서 살다가 58세이던 1986년부터 수원에서 거주했다. 1993년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안 할머니는 2002년부터 본격적인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며 자신의 피해를 증언했다.

김희열 기자  khy@1g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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