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청 세정과장 강구인

무척(無尺) 더웠다. 올해 더위가 우리나라 기상관측 이래 110년만의 더위였단다. 열대야로 어지간(魚池間)히 밤잠을 설친 해였던 것 같다. 집에 에어컨 없이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불편을 느껴 보았다.

여름더위하면 떠오르는 것이 피서와 복달임일 것이다. 전국적으로 들로 산으로 해변으로 더위를 피해 떠나는 여름휴가가 이제는 보편성을 떠나 필수적인 일상이 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추석·설날에만 귀성행렬로 도로가 주차장이 되었는데, 이젠 여름 휴가철이나 봄가을 나들이 철까지 일 년 내내 교통 혼잡이 장난이 아니다. 이런 것을 보면, 모두 살기 어려워 죽겠다고 엄살은 떨지만, 우리나라가 잘사는 나라는 맞는 것 같다.

여름 행사 중, 특히 마을 노인정이나 큰 조직에서 행사를 빼먹으면 큰일이라도 날듯이 치러야하는 것이 복달임행사다. 삼계탕에 수박에 더위를 식히고, 더위에 허해진 기운을 북돋는 뜻이겠다. 글자대로라면 가을 음기(陰氣)가 오다가 여름더위에 세 번을 엎드린다고, 역사적으로는 중국 진시황(秦始皇)때부터였다 하니 2천3백여 년 전부터 이어져 오는 풍습이다. 인간이 가장 먼저 가축화 했다는 개나 닭으로 몸보신을 해온 지혜일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반려견(伴侶犬), 식육견(食肉犬)의 개념충돌로 문제가 있지만.

삼복(三伏)은 음식이 주(主)가 아니고, 그 깊은 뜻을 아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제사에서 음식은 그저 제사의식의 종물(從物)로, 원래 돌아간 이를 추모하기 위해 자손들이 모여 친목을 다지는 행사인데, 사람은 먹어야 살기에 음식을 나누는 것일 뿐, 조상 기일에 후손들 친목도모에 중점을 두었으면 한다. 복달임도 마찬가지이다. 삼복은 설이나 추석, 한식, 단오 등과 같이 사이비(似而非) 24절기다. 하지(夏至)다음 세 번째 경일(庚日)부터 입추(立秋)다음 첫 경일(庚日)까지 소서(小暑), 대서(大暑) 더위를 다스려, 풀도 성장을 멈춘다는 처서(處暑)에 무사히 이르게 하여, 가을결실의 기쁨을 맞으라는 의미가 복달임이다. 오행(五行)상 여름은 화(火)요, 가을은 금(金)이다. 춘하추동(春夏秋冬) 오행(五行)상생(相生)으로 계절이 순환하다가, 여름 화기(火氣)에서 가을 금기(金氣)로 넘어가는 시기가 화극금(火克金) 상극(相剋)으로 막혀, 바로 넘지 못하고,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 우회방법이 삼복이다. 오행상 경(庚)은 약금(弱金)이므로 금화교역(金火交易)의 단계를 거쳐 가을 금(金)역할을 하게 한다는 것이며, 개(戌)와 닭(酉)또한 12지(支)중 금(金)에 속하는 동물로 약한 경(庚)기운을 보좌(輔佐)하자는 것이다.

훈민정음과 삼복은 무슨 관계일까? 삼복은 24절기는 아니나 하지에서 처서에 이르는 시기 즉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라 했다. 24절기는 봄(입춘·우수·경칩·춘분·청명·곡우)과 같이 여섯 절기를 보름마다 사계절에 배치한 것이다. 훈민정음자음도 아음(牙音/木/春/ᄀᅌᄏ), 설음(舌音/火/夏/ᄂᄃᄐ반설음ᄅ), 순음(脣音/土/-/ᄆᄇᄑ), 치음(齒音/金/秋/ᄉᄌᄎ반치음ᅀ), 후음(喉音/ᄋᅙᄒ) 등 17자 및 모음 11자 도합 28자를 오행에 따라 계절에 따라 배치한다고 제자해(制字解)에 적시하고 있다. 28자라 함은 별자리 28수(宿)의 의미가 있는 듯하다.

이 오행 배치에 따라 자음을 3자씩 기본적으로 배치한 설명은 상세히 하고 있으나, 굳이 여름에 반설음 ᄅ과 가을에 반치음 ᅀ을 배치하고 있는가는 자세한 설명이 없다. 정확한 것은 전문가들의 명쾌한 답을 들어야겠지만, 내 나름대로 생각한 것을, 음양오행으로 부연 설명하면 삼복이 24절기의 순행을 위한 하나의 완충장치인 것처럼 반설음과 반치음도 여름·가을 변화시기인 금화교역(金火交易)의 시간대에 배치하여 훈민정음이 천문 28자리 별자리처럼 영원하였으면 하는 의미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대입해본다.

음양오행으로 삼복을 설명하다 보니, 의문스럽던 훈민정음 문제까지 언급하게 됐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발음기관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부분이 한군데 있다. 가끔은 음식을 씹다가 이빨(가을상징)로 혀끝(여름상징)을 깨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바로 여름·가을의 충돌인 것이다. 오늘이 그 충돌이 있을 수 있는 말복이다. 복달임도 해야겠지만, 여름·가을 이 즈음에 삼계탕만 챙길 것이 아니라 훈민정음도 훑어보고 세종대왕의 고귀한 뜻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새겼으면 한다. 삼계탕 씹다가 자기이빨로 입술을 깨물었을 때, 퍼뜩 세종대왕의 편민(便民)정신을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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