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령도 공항이 들어설 예정 부지.
▲ 백령도 공항이 들어설 예정 부지.

백령도에서도 선사시대부터 농경과 어로를 하며 사람이 살았다. 한사군의 일부였다가 고구려에 편입된 이후 곡도(鵠島, 따오기섬)라 불리었고 고려 태조 때 백령진이 되어 '백령'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고려와 조선시대 때는 대표적인 유배지였다.

조선 세종대왕 때 잠시 수군진(영강진과 통합하여 강령진, 이후 강령현으로 해주 목사 관할)이 생겼으나 이후 다시 폐지, 광해군 때야 본격적으로 백령진이 제 구실을 하기 시작했다. 조선 중후기 백령도는 황해우도 옹진의 병마절도사 휘하로 있었으며, 백령진에 파견된 백령진장(첨사)은 수군첨절제사(정3품, 당상관)를 겸하며 수령이자 군사령관으로써 즉결심판권까지 있었다. .

고종 때 갑오개혁으로 진제가 폐지되고, 23부제에서 해주부에 속했으며, 이때 귀양온 반정부 인사들이 개신교를 전파한 게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중화동 교회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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