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 세정과장 강구인

인터넷에 사람이란 단어를 검색하면 ‘두발로 서서 다니고 언어와 도구를 사용하며, 문화를 향유하고 생각과 웃음을 가진 동물’이라고 뜬다. 사람이란 한글단어가 가장 먼저 문자화된 것은 훈민정음 해례의 합자해(合字解) 중에 ‘孔子ㅣ魯ㅅ사람(공자는 노나라의 사람)’이란 구절이고, 그 뒤 훈민정음서문 언해본에서 ’使人人易習(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부분에 또 등장한다. 사람들은 언어를 구사한다는 인터넷의 정의와 훈민정음 창제의 동기 또한 같다고 여겨진다. 훈민정음에서의 ’사람‘의 의미는 가장 숭고한 애민정신의 피사체인 것이다. 현시대의 정치도 ’사람‘을 위한 것일진대 얼마만큼의 애민정신이 녹아 있을는지는 각자 생각해보자.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오면서 세상은 더욱 단순하면서 복잡다단해지고 있다. 그런 시대에 각광받는 문자가 자랑스러운 한글로 독보적이라 한다. 세종대왕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훈민정음을 총괄적으로 살펴보면, 木火土金水(목화토금수) 오행순서대로 인간의 발음기관을 상형한 牙舌脣徵喉(아설순치후)자음과 天地人(천지인) 三才(삼재)를 상형한 모음을 五方(오방,東西南北中央)에 음양으로 배치하면서 반설음(ㄹ)과 반치음(ㅿ)을 두어 28자를 반포하였으니 세종대왕의 뜻은 28수의 천문별자리 숫자에 맞추었을 것이라 한다. 즉 한글은 음양오행, 팔괘, 천문 및 애민정신의 총합으로 일체화 되어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훈민정음 서문은 28의 배수인 54자이고, 언해는 54의 배수인 108자다. 백팔번뇌를 잊으려면 훈민정음을 익히라는 뜻인지, 아니면 불가의 숫자를 빌려 훈민정음의 영원성을 강조하였는지 모를 일이다. 또한 알 수 없는 일은, 훈민정음이 목각본으로 인쇄되었고, 전국의 백성에게 가르치려면 적어도 수만 본은 찍어 배포하였을 정황인데, 해례본 책자가 희소한 이유를 모를 일이다. 민중과 부녀자들이 국문소설을 쓰고 심청전, 흥부전, 춘향전을 읽고 쓸 정도라면 분명 민가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존재했었다는 가설이 어렵지 않다. 일제가 조선말살정책에 의거 모두 거두어 들여 진시황처럼 분서(焚書)하지 않았나하는 의구심만 증폭될 뿐이다.

사람에 대한 논지가 뜬금없이 훈민정음으로 향한 것은 ‘사람’글자의 발음과 관련하여 또 다른 의미를 알고자 함이다. 간단히 말하면 차량으로는 앞뒤 범퍼요, 계절로는 삼복(三伏)을 둔 이치와 같이 한글자음 오행체계의 완충장치가 반설(ㄹ), 반치(ㅿ)음인 것이다. 두 완충장치를 가미하여 천문 28자리의 숭고한 정신이 이 땅에 거한 것을 나타낸 것이다. ‘사(ㅿ)람(ㄹ)’으로 유추하면, 이 우주에서 문자와 언어로 소통하며 자연과 문명속에서 완충역할을 하는 것이 ‘사람’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요즘 각 지자체장 선거후에 관습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구호나 슬로건 등을 교체하는 것이다. 그 중에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글자가 ‘사람’이다. 대통령을 풍자하는 코미디프로그램부터 우리시 시정구호까지 ‘사람’이 강조되는 시대가 됐다. 아울러 우리시는 전임시장 시절의 ‘사람들의 용인’이 현 시장님 소신인 ‘사람중심’과 별반 차이 없다는 뜻에서 그냥 사용하기로 하여, 재정적 부담을 엄청 덜고 타지자체에 선진사례가 되었다. 현시장님 의지대로 난개발만 치유된다면 명실상부하게 살기 좋은 ‘사람들의 용인’이 되리라 빌어본다. 사람들도 저 훈민정음에 나타난 애민정신과 위에서 논한 완충적인 정신에 부합하는 사람들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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