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편집위원

옛 전래동화 한 편 다시 읽고 시작하겠다.

시집을 간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색시가 밥을 짓다 말고 부엌에서 울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남편이 이유를 물으니 밥을 태웠다는 것이다. 남편은 오늘은 바빠서 물을 조금밖에 길어오지 못했더니 물이 부족했던 모양이라며 자기의 잘못이라며 색시를 위로했다. 이 말을 들은 색시는 울음을 그치기는커녕 감격하여 더 눈물을 쏟았다. 마침 부엌 앞을 지나가던 시아버지가 이 광경을 보고 이유를 물었다. 사정을 들은 시아버지는 내가 늙어서 근력이 떨어져서 장작을 잘게 패지 못해 화력이 너무 세서 밥이 탔다고 아들과 며느리를 위로했다. 그때 이 작은 소동을 들은 시어머니는 내가 늙어서 냄새도 못 맡아서 밥을 내려놓을 때를 알려주지 못했다면서 며느리를 감싸주었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여당은 광역단체장을 비롯한 단체장 대부분을 휩쓸었으며, 득표율 또한 시쳇말로 ‘게임도 안 되는’ 두 자릿수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예상된 결과였지만, 이번 선거는 인물이나 정책보다는 ‘그냥 찍는’ 로또 찍기나 다름없었다. 특이한 것은 국민은 여당이 아닌 야당을 심판대상으로 삼았던 점이다. 참으로 이상스럽게 뒤바뀐 선거판이었다. 경기도지사 선거만 해도 여배우 스캔들이 악재로 나왔지만, ‘이부망천’이라는 야당 대변인의 막말 한 방에 황당하게 날렸다.

정말 괴물 같은 세상이 됐다. 갈수록 놀라운 사건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수시로 일어난다. 일어난다기보다 사회 곳곳에 만연한 상태다. 너나없이 피해자이며 가해자인 공범이며 주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너 때문이야, 조상 탓’으로 돌리고 있으니 절대로 전화위복의 기회는 오지 않을 게 뻔하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무색하다. 요즘 사람들은 이익과 관계되는 일이 생기면 그야말로 ‘내 밭에만 물을 대면 된다’는 아전인수(我田引水)로 바뀌었다. 이기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세상으로 변했다.

동물학자 E. 마레이즈는 아프리카 개미에게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그는 개미집 둘레에 둥그렇게 홈을 파고 물을 대놓고 외부와 개미집을 차단했다. 물론 개미집에 있는 개미도 있었고 일부는 밖으로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나간 상태였다. 마레이즈는 물로 막아놓은 홈의 한 군데에 가느다란 나뭇가지로 외나무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집안의 개미는 밖에 나가려다가 포기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위험부담을 안고 밖에 나갈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나갔던 개미들은 그 외나무다리 위를 건너 위험을 무릅쓰고 집으로 돌아왔다. 먹이를 식구들에게 먹여야 하기 때문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옛말이 있다. 즉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첫머리의 전래동화처럼 밥이 타긴 탔는데 모두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잘못을 스스로 반성하고 또 자기가 그 책임을 뒤집어쓰면서까지 서로 위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집안에는 화목이 당연히 찾아오게 마련이다. 이처럼 세상을 긍정으로 보면 안 되는 게 없다. 따라서 잘 되는 사람은 무엇인가 다른 이유가 있다.

새삼 빠른 세월의 흐름이 실감난다. 여름, 이맘때쯤이 되면 먼저 가신 아버지가 그립다. 필자는 객지로 떠도는 신세라서 홀로 되신 어머니를 모시지도 못하고 있다. 어언 십수 년째 전화로만 안부를 묻을 뿐인데, 어머님은 아직도 ‘큰아들’ 걱정뿐이다. 필자가 채 철이 들기도 전, 이맘때쯤에 아버지는 뜻하지 않게 병을 얻어 몸져누우셨다. 어머니가 묘목밭에 가서 풀을 뽑고 받는 돈이 전부였던 막막했던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지상천국이다. 오늘도 도시락을 싸 들고 새벽부터 집을 나선다. 뽑아내야 할 풀이 너무 많다. 오늘은 낫으로 쳐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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