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편집위원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황소와 암소는 물론 돼지, 닭, 염소, 토끼 등 그야말로 서울대공원 동물원과 다름없었다. 돼지우리는 텃밭 모서리 사각지대에 있었다. 그곳에 두어 마리씩 넣어 돼지를 키웠던 특별한 사연이 있다. 돼지는 뱀을 잡아먹기도 하고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는 먹성 탓에 소 다음으로 귀하게 여겼다. 살도 금방 통통하게 붙는다. 소고기는 비싸 사 먹지는 못했지만, 이맘때쯤에는 백 근이 조금 넘는 중돼지를 잡아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과 나누어 먹고 본격적으로 일할 채비를 서둘렀다.

요즘은 보기조차 귀해졌지만, 미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자투리땅에는 메밀뿐만 아니라 어른 키보다 더 큰 호밀도 심었다. ‘검은 빵’이라고 그 호밀로 만든 빵을 마치 약처럼 먹었다. 탄수화물이 많은 그 빵을 먹으면 대부분 똥으로 빠져나오는데 완전 ‘검은 똥’이다. 어머니는 뒷간에서 똥을 보시고 우리들의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안심하셨다. 그게 속을 말끔하게 씻어냈다는 확실한 증거라고 믿거나 말거나 한 그런 옛이야기다.

개똥만 빼고 사람의 똥, 소똥, 돼지똥, 닭똥, 말똥 등 정상적으로 잘 먹고 배설한 똥은 발효만 잘 시키면 우리들의 먹거리가 되는 작물의 귀중한 밑거름이 됐다. 그런 똥에서 나온 밥을 멀리하는 현대 문명사회로 발전하면서 옛날에는 없던 희한한 병들도 참 많아졌다. 위에서 읽었듯이 똥이 거름이던 시절에는 호밀빵은 물론 꽁보리밥에 나물이라도 잔뜩 넣고 아랫배가 불룩하도록 배불리 비벼 먹었지만, 지금보다 건강하게 잘 살았다. 가끔 채독에 걸려 피부에 붉은 반점이 생기긴 했으나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독이 풀렸다.

갑자기 지면을 ‘똥’ 쪽에 너무 많이 허비했다. 요즘 표를 얻으려고 똥줄 태우던 사람들도 많았었다. 전국적으로 지난 금·토 이틀간의 사전투표율이 20.14%로 집계됐다. 서로 자신들이 유리하다며 승리를 장담하지만, 결과는 글쎄올시다, 예측불허다. 경기도지사 선거는 영화 ‘애마부인’으로 튀었던 여배우와 ‘스캔들’이 있다는 설로 한바탕 떠들썩했다 그런데 갑자기 자유한국당 선거대책위 대변인의 입에서 ‘이혼하면 부천 가고 망하면 인천 간다’는 ‘이부망천’이라는 막말로 똥물을 확 끼얹었다. 그야말로 당 대표부터 입이 방정이더니 그 당은 이래저래 엉망진창 풍비박산 나게 생겼다. 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뻔한 게임이었다. 내일 개표 결과를 봐야겠지만, 별 재미도 없이 보나 마나 하게 생겼다.

선거는 제대로 된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면 진짜로 일 잘할 만한 사람은 온갖 유언비어로 집중 공격을 받으면서 상처투성이가 되어 거덜 난다. 물론 가끔은 꿋꿋하게 당선되기도 하지만, 엉뚱한 제3의 인물이 득을 볼 때도 있다. 반지도 모조품은 원석보다 더 진짜 같고 훨씬 아름답게 보인다. 처음부터 지지했는데, 투자가 아까워 정에 못 이겨 또 그렇고 그런 사람을 다시 한번 더 뽑아주면 또 악순환만 계속될 뿐이다. 선거철에만 얼굴을 내밀고 허리 굽히고, 당선 후에는 목에 깁스했던 권위주의에 빠진 기분 나쁜 사람들은 비 온 뒤 잡초를 뽑아내듯 매몰차게 솎아버려야 한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강인한 정신력과 불굴의 의지로 위기를 극복하면서 노력했을 때 기회도 이어지게 마련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말 한마디 잘못하면 어느 사람이라도 온전할 수 없다. 이제 오늘부로 선거전은 끝장난다. 그동안 열띤 선거전으로 그늘진 주변을 오히려 살펴볼 기회가 없었다. 당락과 관계없이 서로서로 위로와 치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하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고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라 포기’라는 말을 상기하라. 기쁨이나 슬픔은 잠시 잠깐이다. ‘밑지는 장사는 하지 않겠다’는 미국 대통령의 똥배짱에 또 똥줄이 탄다. 하지만 그런 그가 참 부럽다. 부끄럽고 속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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