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편집위원

죽어야 산다. 맛있는 김치는 한 번도 아니고 다섯 번이나 죽는다고 한다. 땅에서 뽑힐 때 한 번 죽고, 배춧속이 갈라지면서 또 죽고, 소금에 절여질 때 다시 죽고, 매운 고추와 짠 젓갈에 범벅돼서 또다시 죽고, 마지막으로 장독에 담겨 땅에 묻히면서 죽어야만 비로소 제대로 된 김치 맛이 난단다. 우리 인생 또한 그러하다. 자기만의 외고집을 죽여야 하고, 남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도 죽여야 대접받는다. 특히 자신의 욕심을 챙기려고 남의 약점을 들추는 근성부터 죽여야 삶의 맛이 진하게 풍긴다.

엊그제 월요일, 5월 21일은 둘이 하나가 되라는 부부의 날이었다. 부부는 반쪽의 두 개가 아니라 하나이다. 부부가 다투는 것도 서로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원인을 상대에게 돌리기 때문이다. 내 허물이냐 네 허물이냐 이익이냐 손해냐 하는 생각부터 버려야 부부간에도 금실이 좋아진다. 예수님도 그러하지만, 부처님은 자신의 삶보다는 만인을 위해 힘겨운 고난마저도 즐거이 받아들이며 사람끼리 공존하는 삶을 모습을 몸소 보였기에 오랜 세월 사람들이 따르며 존경하는 것이다.

어제 음력 사월 초파일은 1975년 1월 대통령령에 따라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는 그 명칭이 석가탄신일이 아닌 부처님 오신 날로 변경해 부르게 됐다. 예전부터 이날은 불교도이든 아니든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이 함께 즐긴 민속 명절이기도 했다. 연등·방생·탑돌이 등 갖가지 행사도 하면서 하루만이라도 부처님처럼 살고자 하는 날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외쳤던 부처님은 왕자의 자리까지 박차고 사람이 왜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결국은 죽는 것이냐는 의문에서 구도의 길을 떠났다. 그 결과 많은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진실로 몸과 마음이 평안하고 즐겁고 괴로움이 없는 안락과 자비의 삶을 사셨다. 부처님 오신 날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자비와 베풂을 아끼지 않았던 부처님 같은 삶과 태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미 한 달 전부터 연꽃 형상의 등이 거리에 줄줄이 걸렸다. 연등을 켜는 이유는 지혜로 번뇌와 무명을 타파해 반드시 성불하겠다는 다짐이라지만,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이 마음 가까이 와닿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부처님 오신 날이면 가까운 절에 가서 각자의 소원을 빈다. 연등과 관련해서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이 유명하다. 이 말은 왕과 신하들이 부처 앞에 바친 백 개의 등은 밤사이에 기름이 다 되어 꺼졌는데, 가난한 노파가 전 재산을 털어 바친 등 하나만은 계속 불이 켜져 있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로, 정성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사람과 사람이 차별받지 않는 좋은 정책을 만들고 실천하는 목적으로 정치를 한다. 정치인은 혈세를 아낌없이 써가며 각종 특권을 누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양복 깃에 금배지만 달면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돌변한다. 그야말로 선택해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들끼리 깎아내리는 데에만 혈안이 돼 자신들의 얼굴에 서로 먹칠하는 중이다.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삿된 길로 끝도 없이 추락한다. 돌아오는 선거에서는 정당에 상관없이 진정으로 공동체를 위할 참한 사람,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질 제대로 된 선량을 가려 뽑아야 한다. 다음 달부터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이 아니라, 서로서로 win-win 하는 삶을 꿈꾸어보자. 맛있는 김치가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하고 우리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듯이, 지금까지 몇 번씩 죽었던 그대들이 세상에 나와 맛깔나는 참정치를 꼭 펼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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