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창기 대불호텔 모습.
▲ 초창기 대불호텔 모습.

1900년 무렵 서울에도 호텔이 들어서게 되었다. 경운궁 인접지역의 서울호텔(Seoul Hotel), 경운궁 대안문 앞의 프렌치호텔과 임페리얼호텔, 그리고 서대문 정거장 부근의 스테이션호텔 등이 개업했다. 1896년을 전후한 시기에 영업을 시작한 손탁호텔은 1902년 2층으로 된 서양식 벽돌건물을 신축하여 궁내부의 프라이빗호텔의 형태로 운영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호텔들은 규모가 크지 않았으며, 서양식 숙박시설 그이상의 의미를 갖지는 못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식 여관도 운영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파성관(巴城館)과 포미여관(浦尾旅館) 등이 있다. 이중에서는 1906년(또는1911년)에 개업한 경성호텔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호텔이라고 부를 수 있는 최초의 호텔은 1914년 건립된 조선호텔이다. 1911년 무렵부터 철도호텔들이 계획되고 건립되었으나 철도호텔로 건립된 조선호텔의 규모와 위상은 다른 어느 호텔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지상4층, 지하1층의 규모에 60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었다.

원구단 부지를 철거하고 건립된 조선호텔은 단순히 상업적 목적에 따라 건립된 호텔이 아니라 식민지배의 상징으로 활용되었다. 1915년 물상공진회 방문 외국 귀빈 숙소를 비롯하여 정무총감, 조선총독 등 식민지 정부의 주요 권력자들이 활발하게 사용하고, 업무회의나 각종 행사를 진행하는 등 조선총독부의 영빈관 역할을 하였다. 1921년에는 부대사업의 일환으로 용산에 골프장까지 운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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