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편집위원

해가 바뀌었어도 더욱 가슴 아프게 떠오르는 날이 있다. 어제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4주기였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필자는 강원도 산에서 내려와 모 시장 예비후보로 나선 친구의 선거캠프에서 기획을 맡았었다. 자정쯤에 숙소에 들어갔다가 이른 새벽에 선거캠프로 나오는 강행군이었다. 일정에 따라 후보자와 수행팀을 시내로 내보낸 후 티브이 앞에서 커피를 마시며 내부 참모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며칠 앞으로 바짝 다가선 경선에 승리하기 위해 그야말로 신발끈을 바짝 동여맨 상태였다. 경선 방식이 여론조사 50%+당원투표 50%로 결정되었으므로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서 얼굴을 알리는 게 급선무였다. 며칠 전부터 ‘선거의 여왕’이라던 현직 대통령과 악수하면서 찍은 사진도 찾아내 홍보물 초안에 넣고, 캐치프레이즈도 ‘안전한 ㅇㅇ시 건설’로 바꿔 명함도 새로 주문했다.

바로 그때, 뉴스 속보가 티브이 자막에 떴다. ‘진도 인근 해상 대형 여객선 침몰’이라는 내용이다. 예전부터 선거철만 되면 엉뚱한 사건이 터졌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공포 분위기로 몰고 가려는 보도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티브이 화면에는 커다란 배가 기우뚱하게 기울어 가라앉는 모습을 헬기 영상을 통해 실시간으로 송출하고 있다. 후보자에게 긴급 통화를 시도했으나, 다시 ‘전원 구출’이라는 자막이 떴다. 천만다행이라면서 상승세를 타고 있으니 일단 경선만 통과하면 시장은 ‘떼 놓은 당상’이라면서 화제를 돌렸는데,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오보였다는 자막과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세월호의 모습이 흐릿하게 나온다. 그곳에도 비가 내리는지 카메라 렌즈에 물방울까지 맺혀있다.

벌써 4년 전 일이다. 2014년 4월 15일에 인천에서 출발하여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학생들이 탔던 배가 4월 16일 아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구조를 위해 해경이 도착했고, 맨 처음 구조된 사람은 그 배의 선장과 선원들이다. 다급했던지 선장은 속옷 차림으로 맨 종아리를 내놓고 탈출했다. 그런데 그들은 선내 방송으로 ‘가만히 있으라’고 했단다. 그때까지만 해도 설마 그 큰 배가 가라앉을 줄은 몰랐다. 어린 학생들은 스마트폰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찍어 보냈다. 그런데 배는 밑바닥을 하늘로 향한 채 뒤집혀 완전히 가라앉았다. 그 이후 구조되는 사람이 더는 없었다. 승객 476명 중에는 단원고 학생들 325명이 있었고, 304명은 차가운 바다에 수장됐으며, 아직도 시신조차 찾지 못한 희생자가 5명이 있다.

정말 어처구니없다. 처음부터 엉망진창으로 뒤엉켰다. 급기야 광화문 광장은 물론 시골의 앞마당까지 사람들이 모여들어 밤마다 촛불을 들고 정부에 항의했다. 그러나 그날의 참사에 책임지려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정부는 진실을 은폐하고 변명을 늘어놓으며 훼방까지 놓았단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날 대통령은 10시가 넘도록 ‘늦잠’을 잤단다. 어린 학생들이 바닷물에 잠겨 죽어가는 판국에 대한민국 대통령은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니 그야말로 자괴감이 든다. 휴일도 아닌 평일인데 늦잠까지 자는 특권이 대통령에게 있었다니 이게 나라인가 의심스럽다. 결국, 분노한 국민들은 잠꾸러기 대통령을 촛불로 밀어냈다. 헌법재판소는 늦은 감은 있지만, 임기 1년여가 남은 대통령을 파면했다. 그 바람에 연말이던 대통령 선거를 장미꽃 만발한 5월에 시행한 결과 새 대통령으로 정권이 교체됐다.

외출용 가방에 매달린 ‘노란 리본’을 아직도 떼어내지 못했다. 그래도 새 대통령이 심기일전 잘하는 편이다. 지지율 또한 내려갈 줄 모르며 고공행진이다. 요즘 그런 후광 덕을 보려는 후보자들이 많아져 걱정이다. 이번 6·13지방선거의 집권당 예비 후보자들의 명함을 보면 너나없이 ‘대통령’이다. 언제부터 그렇게 대통령과 사적인 인연을 맺었는지 재주도 신통하다.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대통령을 팔아 정치하겠다고 나섰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런 자들은 안 봐도 비디오다. 자신의 영혼조차 못 찾은 그대들은 제발 나대지 말고 집에서 가만히 좀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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