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편집위원

지하철역이나 백화점, 공공장소 등에서 붐비는 인파를 뚫고 길을 걸을 때면 이따금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과 우왕좌왕할 때가 있다. 차량의 진행 방향이야 중앙선으로 구분되지만, 보행 시는 알아서 방향을 잘 잡아야 탈이 안 생긴다. 한동안 좌측통행이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우측통행으로 바뀐 탓이다. 필자도 그 습관을 아직도 버리지 못해 나도 모르게 좌측을 고집하며 걷는다. 그래서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과 부닥칠 찰나에 살짝 우측으로 틀었다가 다시 좌측을 고집하며 걷는다.

‘길’이라는 단어는 학창 시절 백일장 행사 때 단골로 나오던 제목이기도 하다. 실크로드, 로마 길처럼 ‘길’ 앞에 관형어를 붙이면 더 크고 아름다운 낱말도 만들어진다. 제주도의 올레길에서 시작해 숲길, 산길, 들길, 언덕길, 오솔길, 꼬부랑길, 고샅길, 골목길과 뒤안길은 물론 험한 자갈길과 진창길과 눈이 오면 눈길, 비가 오면 빗길로 변한다. 시멘트로 덮인 도시의 한길 즉 큰길과 가로수길, 시골길, 논두렁 밭두렁 길은 물론 빠르게 앞질러가는 지름길과 사잇길, 오르내리는 길, 돌아가는 길 등 끄집어내면 한도 끝도 없이 자꾸만 나온다.

탈것들에서도 물 위를 가는 뱃길, 기차와 전철이 움직이는 철길, 높은 하늘로 비행기가 떠가는 하늘길도 있다. 그뿐인가. 천천히 쉬면서 가는 여행길은 물론 사회에서 출세하는 벼슬길에서부터 마음속 마음길, 꽃길, 꿈길도 역시 길이다. 이처럼 마음 안팎과 모든 세상이 길로 통하는 우리네 인생길이다. 비록 실체는 없으나 관념적으로 ‘다른 길은 없었을까?’라든가 ‘손쓸 길이 없었다고?’ 할 때도 역시 길 찾기에서 비롯되었다.

선거철만 되면 새로운 길을 열겠노라 마치 자신이 선지자라도 되는 양 어깨띠를 두른 사람들이 길을 막고 명함을 건넨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파로 나뉘어 치고받으며 싸운다. 그 판에서는 서로의 다름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생트집을 잡아서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깔아뭉개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이러한 악순환은 영원히 사라질 수 없는가 보다. 그래야만 되는 것으로 아예 굳어졌다. 좋은 정책을 얘기하고 다 함께 잘 사는 길을 모색해야 할 지도자들이 이 모양 이 꼴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더불어 살아가야 할 꽃길은 흑색으로 엉망진창이 됐다.

살다 보면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막힌 길이라면 돌아가면 되겠지만, 더 나갈 길이 없는 낭떠러지 앞길 같은 절박감에 짓눌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길은 여기에서 저기로 누구나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열린 통로이다. 어디엔가 분명히 내가 갈 길이 있을 텐데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다. 이런 글을 쓰는 일조차 아무도 가지 않은 곳에 길을 내고 누군가 마음을 열고 따라오게 하는 정신적 노동의 길이다. 인생길을 걸어오면서 후회하고 망설인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힘겨웠던 고통의 순간도 세월이 지나면 진한 추억으로 되살아나 활력이 되기도 한다.

바로 엊그제였다. 4월 첫날, 봄이 오는 길목에서 남과 북에 또 하나의 길이 열렸다. 조용필, 최진희, 강산에, 이선희, 윤도현, 백지영, 정인, 알리, 서현, 김광민 그리고 걸그룹 레드벨벳까지 11팀(명)의 가수들이 북한 동포들 앞에서 우리 노래를 열창했다. 그 자리에는 우리 측 대표단은 물론 북측의 김 위원장을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관람해 기립박수를 보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남측 예술단이 내건 주제가 ‘봄이 온다’였다. 그렇다. 봄이 왔다. 이젠 정말 꽃길만 걷자. 이번 가을쯤에는 통일로를 통해 북한 공연단을 맞이하는 꿈길을 열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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