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그간의 정세가 표면적으로는 조용하면서 물밑에서 암중모색하는 정중동의 단계였다면 찬바람이 부는 가을부터는 가시적인 변화들이 잇따를 전망이다. 

우선 북한 외무상이 15년만에 처음으로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 참석한다. 명목상으로는 총회 참석이지만 고위급 북-미 채널의 복원에 외교가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오는 11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는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1년 5개월여만에 양자회담을 가질 예정이고, 한일 관계 만큼이나 경색돼 있는 중일 관계도 이 회의를 계기로 모종의 관계 개선 움직임이 모색되고 있다. 

북일 관계도 급진전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북한과 납북자 문제로 개별 접촉을 갖고 있는 일본은 협상 순항을 전제로 일본 최고지도자의 방북을 예고해 놓은 상태다. 일본은 한미일 군사동맹의 당사자인 한국을 제쳐놓고 북한과 중국을 개별 상대하는 전략을 취하면서 동북아 외교의 주도권을 쥐려 하고 있고, 북한도 교착상태인 남북 관계를 제쳐 놓은 채 미국 일본과 별도 채널을 가동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동북아 외교에서 중국의 부상은 이미 상수가 됐고, 일본 북한의 움직임도 이처럼 활성화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의 모습은 또렷하지 못하다. 일본과의 관계를 이대로 끌고 가선 안 된다는 인식하에 현상타파의 돌파구 마련을 시도하고는 있지만 역사 인식의 공유라는 벽에 부딪쳐 꼼짝하기 힘든 상황이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전향적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한 최악의 한일 관계가 개선될 기미는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는다. 조만간 한일 차관급 전략대화가 재개될 것이라고는 하지만 현 상황에선 큰 기대를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한미 관계도 과거만 못하다. 시진핑 주석의 지난 7월 방한을 계기로 한중 밀월에 대한 미국측의 의심이 짙기 때문이다. 

이수용 북한 외무상의 이달 말 유엔 총회 참석이 `통미봉남'(通美封南)의 북한측 전략을 미국이 짐짓 수용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 외무상의 방미 일정이 공표된 직후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추석 연휴를 전후해 급하게 미국을 방문하기로 한 것도 북미 개별 접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미간 사전 조율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북핵 대처를 위한 한미일 동맹은 흔들림이 없다고 한국과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틈만나면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개별접촉을 하고 있고, 그 결과를 귀동냥으로 들을수 밖에 없는 것이 지금 우리 외교의 현실이라면 지금의 동맹 관계는 재조정이 필요한 시점일지도 모르겠다. 

동북아 정세는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는, 오로지 국익을 위한 사활의 장으로 변하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의 움직임은 그리 기민하지 못한듯해 안타깝다. 물론 외교는 그때그때 투명하게 사안을 공개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정부의 외교전략이 있어야 하고, 또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이는 작금의 동북아 격랑 시대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불운을 넘어 장차의 생존에 대한 위협이 될수도 있다. 

우리가 이 판에서 왕따가 되지 않고, 오히려 동북아의 주요국으로서 역내 국가들간 협력과 긴장 완화에 주도권을 잡고 갈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그렇게 하려면 무엇부터 풀어내야 하는지 심각하게 자문하고 그 답을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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