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 성악 앙상블 볼 만…엔터테인먼트에 그친 연출 아쉬워 

올해로 5회를 맞은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이 지난 2일 오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심사를 통해 선정된 참여작은 다섯 편이다. 올해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 지성호의 '루갈다', 

푸치니의 '나비부인', 생상스의 '삼손과 데릴라', 임준희의 '천생연분'이다.

작품성을 인정받은 창작오페라 두 편이 들어 있어 반갑고, 국내 공연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슈트라우스의 작품을 만나게 돼 기대가 컸다. 

2008년 카를로스 바그너가 연출한 국립오페라단의 '살로메' 이후 국내에서 슈트라우스의 오페라가 공연되는 것은 처음이다.

한국오페라단(단장 박기현)의 '살로메'는 그리그의 '페르귄트' 중 '오제의 죽음'으로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숙연하게 시작해 음악평론가 장일범 씨의 친절하고 흥미로운 해설로 본격적인 막을 열었다.

관객을 아득히 높은 세계로 이끄는 듯한 끝없는 계단, 시대를 짐작할 수 없는 일그러진 도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연출가 마우리치오 디 마티아는 인간의 탐욕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헤롯왕이 연회를 여는 궁전은 클럽으로, 경비 중인 병사들은 검은색 정장에 선글라스를 낀 조폭 청년들로, 경비대장 나라보트는 광대 분장을 한 클럽 안내원으로 바뀌었다.

굉음을 일으키며 요란한 조명 속에 등장하는 할리 데이비드슨 폭주족, 빈번한 권총 살인, 상대를 가리지 않는 난교와 혼음을 암시하는 장면들이 무대를 채웠다.

1905년 초연 때 이미 선정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작품인 만큼 '살로메'의 선정성을 굳이 피해갈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디 마티아의 연출은 '살로메' 해석의 무궁무진한 가능성 가운데 '쾌락의 탐닉과 허무'라는 가장 수월하고 진부한 해석을 선택함으로써 연출적 상상력의 빈곤을 보여줬다.

미래 세계가 우리의 현재와 전혀 다를 것 없다는 설정은 연출가의 비관주의를 드러내는 장치일 수 있지만, '살로메'의 현대적인 연출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는 아쉬움을 남길 만하다. 작품의 맥락과 무관하게 쇼처럼 펼쳐지는 신체 노출 장면들이 없었다면 조금 더 나은 연출이 됐을 것이다.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 등 현대음악에 조예가 있는 지휘자 마우리치오 콜라산티와 서울필하모닉은 청중에게도, 오케스트라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이 어려운 작품을 큰 무리 없이 제 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클라리넷이 강박적으로 살로메의 테마를 연주하는 부분의 전율을 일으키는 고요와 오케스트라 총주부의 눈부신 강렬함 등 이 작품에서 청중이 기대하는 극단적인 대비의 효과를 충분히 살리지는 못했다. 슈트라우스 원작보다는 편성 규모를 줄였는데도 적절한 음량 콘

트롤이 부족해 요하난과 살로메의 목소리가 종종 오케스트라에 묻힌 것도 아쉬운 점이었다.


살로메-한국오페라단2014-요하난을 유혹하는 살로메

'살로메'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일곱 베일의 춤'은 극적인 응집력이 부족했다. 낯선 동방의 음악과 익숙한 유럽 왈츠 음악이 전반과 후반의 대비를 이루며 뒤로 갈수록 감정을 격렬하게 고조시켜야 함에도 이날 상당히 평면적으로 들렸던 것은 곡 전후반의 대비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무대 연출 때문이기도 했다. 누드모델 네 사람을 완전한 나신으로 만든 장면은 음악의 전개와 맥이 일치하지 않는 설정이었다. 

연출에 아쉬움이 많았던 반면, 가수들은 모두 적역이어서 관객의 시선과 귀를 무대에 붙잡아 둘 수 있었다. 살로메 역의 독일 소프라노 카티아 베어는 당당하고 매혹적인 미모와 유연한 연기로 무대를 장악했다. 드라마틱 소프라노로서 경질의 고음도 갖췄다. 그러나 발성 방식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 가사 전달이 명료하지 않은 것은 약점이다.

살로메의 숭배와 구애를 거절하는 세례 요한(요하난) 역의 바리톤 박준혁은 역할에 잘 어울리는 외모와 연기, 탄탄한 가창으로 설득력을 보여줬다.

헤롯왕 역의 테너 이재욱은 이 공연 최고의 가수로 꼽을 만하다. 그의 명징한 발성과 가사 전달력, 인물의 불안과 성격 파탄을 표현하는 변화무쌍한 연기는 극 전체에 놀라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헤로디아스 역의 메조소프라노 김선정 역시 주역을 뛰어넘는 관능적인 연기와 무대 장악력, 정교한 발음과 흔들림 없는 발성으로 관객을 압도했다.

나라보트 역을 노래한 미성의 테너 강동명을 비롯해 여러 조역의 가창과 연기도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다. 이런 뛰어난 성악가들과 함께 조금 더 숙고할 가치와 의미가 있는 연출을 볼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공연은 4일까지 계속된다.

 

 

 

저작권자 © 일간경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