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개성상인’, ‘송암’은 이회림 회장의 아호이다. 송암 이회림(1917~2007)은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인천에 송암미술관을 세웠다.

1917년 개성시 만월동에서 태어난 이회림은 1946년 서울 종로에 포목점을 내면서 기업인의 길로 들어섰다. 모든 실향민이 마찬가지지만, 고향을 그리는 그의 마음은 각별했다. 개성에서 인천으로 옮겨 온 송도고등학교를 인수해 명문으로 키워 냈고, 개성시민회를 이끌며 격월간지‘송도’를 발행하기도 했다. 말년에는 북한 화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했다.

‘마지막 개성상인’이라는 별명답게 이회림은 자신만의 셈법으로 사업을 일구었다. 어린 나이에 개성에서 점원 일을 하며 장사를 배운 그는 동양화학을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인천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지금도 그는 인천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회림은 기업가로서 삶의 기반이었던 인천을 ‘제2의 고향’이라 말하곤 했다.

인천에서 동양화학 등의 공장을 설립하고 일궈낼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성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2007년 이회림은 끝내 고향땅을 밟지 못한 채 91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그에 앞서 평생을 모아 온 고미술품 8400여 점과 송암미술관을 제2의 고향 인천시에 무상 기증했다. 자신을 성원해 준 인천 시민에게 보답하기 위한 마지막 개성상인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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