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사회2부 부장

이제는 평창동계올림픽의 불꽃도 꺼졌다. 세계 각국에서 세 가지 색깔의 메달을 목에 걸려고 피땀 흘려 연습했었다. 우리나라 여자 컬링 대표팀이 연장 혈투 끝에 짜릿하게 일본을 꺾고 결승에 오르던 경기는 짜릿했다. 그야말로 기적을 만들었다. 주장인 김은정 선수가 김영미 선수에게 ‘영미야, 영미! 영미! 영미 헐!’을 외치던 모습이 인상적이다. 영미를 급하게 부르면 빨리 들어가 스위핑을 하라는 뜻이고, 부드럽게 부를 때는 준비, 부르지 않을 때는 다른 선수가 들어가라 신호란다. 그야말로 억척같이 ‘분투’했던 선수들 장하다. 그나저나 집 안에 있던 로봇청소기도 덩달아 수난을 당하는 중이다. 청소기를 돌려놓고 봉걸레로 바닥을 문지르며 “영미! 영미”를 부르는 게 유행을 탔다.

세상은 어디를 가나 일등 아니면 최고를 따진다. 함께 가자는 건 허울 좋은 말뿐이다. 흑백 갈등이 심했던 남아공에서 최초의 자유선거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가 있다. 그가 자유를 찾기까지 무려 26년 동안이나 감옥에서 있었다. 그가 강조했던 ‘우분투!’가 생각난다. 우리말로 예를 들긴 다소 그렇지만 ‘우리가 남이가?’정도 될 성싶다. 인간은 혼자서 보다는 더불어 같이 살아갈 때 아름다운 이름을 남긴다. 서로 대결할지라도 남이 되기보다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아프리카 부족에 관해서 연구하던 어느 인류학자가 한 부족 아이들에게 게임 하나를 제안했다. 멀리 나무 그늘 밑에는 싱싱하고 달콤한 과일 바구니가 있었다. 누구든지 먼저 도착한 한 사람에게 그 과일을 모두 다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의 예상과는 달리 그 아이들은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의 손을 잡았다. 한 사람도 먼저 앞으로 달려가지 않았다. 나란히 손을 잡고 달려가더니 정답게 둘러앉아 과일을 사이좋게 나누어 먹더란다. “왜 그랬냐?”고 인류학자가 물었더니, 아이들은 마치 합창이라도 하듯 “Ubuntu(우분투)”라고 대답하더란다. 우리 옛말에도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처럼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린다.

시집을 온 지 얼마 안 되는 새색시가 있었다. 하루는 밥을 짓다 말고 부엌에서 울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남편이 이유를 물으니 밥을 태웠단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편이 “오늘은 바빠서 물을 조금밖에 길어오지 못했더니 물이 부족해서 밥이 탔다.”라며 자기의 잘못이라고 새색시를 위로했다. 이 말을 듣고 울음을 그치기는커녕 감격하여 더 눈물을 쏟았다. 때마침 부엌 앞을 지나가던 시아버지가 그 광경을 보고 “내가 늙어서 근력이 떨어져서 장작을 잘게 패지 못했기 때문에 화력이 너무 세서 밥이 탔다.”라고 아들과 며느리를 위로했다. 그때 시어머니가 다가와서 “이제 내가 늙어서 밥 냄새도 못 맡아서 밥 내려놓을 때를 알려주지 못했다.”라면서 자기 잘못이라고 며느리를 감싸주었단다. 이 전래동화를 보면 오히려 내 탓이라면서 서로를 위로한다.

마지막 들어오는 선수의 기록으로 순위가 결정되는 팀 추월 경기에서 뒤처진 한 선수를 두 선수가 왕따시켰다고 청와대 게시판에 국민청원을 넣는 등 난리 아닌 난리가 났다. 메달보다도 중요한 가치가 우리가 남이 아닌 ‘우분투’에 있다. 요즘 ‘투’ 자 돌림으로 미투(me too) 운동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 옛날 쟁쟁했던 원로급 문화예술인들이 줄줄이 끌려 나와 생매장되는 중이다. 사실 관심도 없지만, 부끄러워서 이제는 티브이도 식구들과 함께 못 볼 판이다. 정말로 미안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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