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초 강화는 항일의병 활동이 활발했다. 1907년 일본이 강제로 군대를 해산시켰다. 군대 해산에 반대해 강화성을 점령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까지 의병 저항 운동이 끈질기게 벌어진다. 1905년 강화에서도 일진회가 기승을 부린다. 주민들이 반대하자 일본 헌병대가 주민을 무력을 제압하기도 한다. 

1907년 이동휘를 비롯한 상당수 군인들이 갑곶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인다. 강화 의병대장이 체포되고 일본의 가택 수색으로 군인들과 주민들이 강화도 탈출을 시도한다. 

1907년 12월 이동휘는 강화도에서 보창학교를 세운다. 1908년 10월 강화 보창학교장 이동휘는 학교 경영난을 이유로 재단에 학교를 부속화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1908년 2월 24일 이동휘·강대흠·황범주 등이 강화의 교육을 위한 학무회를 조직한다. 보창학교 역사는 오늘날 강화도 양도초등학교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양도초등학교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동휘는 1907년부터 1908년까지 초대 교장을 지냈다. 보창학교는 이후 흥천합일학교, 양도초등학교로 교명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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