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이선경 비롯해 김세환 이하영 임면수 등 상다수 활동

기생 김향화

내년이면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된다. 최근 수원에서 3.1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출범했다. 수원은 평안북도 의주, 황해도 수안과 더불어 3.1운동의 3대 항쟁지로 알려져 있다. 추진위원회는 3월 1일 수원역에서 3.1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9주년 기념식을 열 예정이다.

(수원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는 이하영(1870~1952) 목사, 필동 임면수 선생(1874~1930), 김세환(1888~1945), 기생 김향화(1897~?), 이선경(1902~1921) 등이 있다.)

◆김세환, 독립만세 운동 사전 조직하고 준비

1919년 3월 1일 전국적으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사전에 조직하고 준비한 47인 중의 한 사람이 수원 출신의 김세환(金世煥·1889~1945·교육자)이다. 그는 1899년 11월 18일 수원시 남수동 242번지에서 태어났다. 새로운 학문을 배우기 위해 한성외국어학교와 일본 중앙대학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수원으로 돌아와 삼일여학교(지금의 매향 여중·상업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19년 10월 감옥에서 나온 직후에는 곡물상회를 경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1925년 4월 17일 종로경찰서에서 경성지방 법원 검사에게 보낸 비밀 문건에 의하면 그는 ‘조선사회운동자동맹 발기 준비위원회’ 수원지역 준비위원으로 참여했다. 위원회에는 당시 전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1927년에는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이 힘을 합쳐 일제로부터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고자 결성한 '신간회' 수원지회에도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하영, 국채보상·애국계몽 운동 주도

수원 팔달구 북수동 행궁 앞에 위치한 수원종로교회는 수원 출신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이하영(李夏榮·1879~1952), 필동 임면수(1874~1930)등이 참여해 설립한 삼일학교의 모태이다.

이들은 종로교회에서 국채보상운동과 애국계몽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하는 등 수원지역 독립운동가들과 궤를 같이했다. 종로교회 설립 당시 '배움을 통한 국가 독립일꾼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자'는데 의기투합한 인물들이 이하영과 의기투합한 인물이 임면수, 나중석, 차유순, 김제구 이성의 등이다.

이들은 교회와 남학교를 함께 설립한다. 이하영은 종로교회안에서 남학교 최초로 교사로 일해오고 한문을 가르치며 학교명칭을 '삼일'(三一)이라고 짓는다. 그래서 수원종로교회 안에서 설립한 현재의 삼일중고등학교의 전신인 삼일학교와 삼일여학교이다.

수원지역 국채보상운동의 산실도 수원종로교회다.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던 1908년 삼일학교 설립을 주도한 이들은 경기도와 충청도의 민중계몽을 위해 기호흥학회 수원지회 설립을 주도한다. 1909년 6월 총회에서 55명이 지회회원으로 가입하는데 대부분이 삼일학교 교사나 졸업생들로, 수원종로교회 기독교인들이었다.

◆김향화, 재판 받으면서 독립의지 굳건

수원 기생들의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인물은 의로운 기생 김향화(金香花·1897~?)이다. 김향화는 1896년 7월 16일 생으로 본명은 순이(順伊)였다. 향화는 기명으로 꽃과 같이 아름다운 그녀의 명성에 걸맞는 이름이었다. 원래 서울에서 태어나고 어느 때부터인지 수원에 내려와 기생으로 이름을 떨쳤다.

김향화는 수원 기생이 된 후 '수원예기조합'의 꽃이 되었다. 갸름한 얼굴에 주근깨가 있으나, 목청은 탁 트여서 애절하면서도 구슬프게 노래를 잘하며 순하고 귀여운 인상이었다. 검무와 승무에 능했고, 경성잡가와 서관소리를 잘 불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당시 스물셋의 기생 김향화는 기생들의 선두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수원기생 30여 명을 이끌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2개월여의 감금과 고문 끝에 경성지방법원 수원지청 검사분국으로 넘겨져 재판을 받고 징역 6개월에 처해져 옥고를 치렀다. 재판 과정에는 많은 사람들이 방청객으로 참석하여 김향화의 의로움을 지켜보았다. 김향화는 기생으로서가 아닌 조선의 백성으로 재판정에 당당히 서서 대한독립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김향화의 의로움은 세상에 알려져 지난 2009년 4월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김향화와 수원 기생들의 3․1운동은 관기의 후예와 전통예능의 전수자로서 보여준 민족적 항쟁이었으며, 일제의 강압적인 기생제도와 식민통제에 대한 생존의 몸부림이었다. 당시 식민지 권력에 대항하며 보여주었던 수원 기생들의 민족적 의로움은 오늘의 교훈으로 이어지고 있다.

◆임면수, 신민회 경기도 책임자로 활동

지난 2015년 8월 15일, 수원 올림픽 공원에서 수원의 독립운동가 필동 임면수(林勉洙·1874~1930) 선생의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동상 제막을 비롯해 ▲임면수 선생 학술대회 ▲책자 발간 ▲초·중·고 독립 인권 평화 PT경진대회 등도 추진했으며, 지난해에는 PT경진대회에서 입상한 학생들과 중국 연변 일대 독립운동 현장을 방문하는 역사탐방을 기획·추진하기도 했다.

임면수 선생은 1874년 6월 13일 수원면 매향동에서 태어나 1893년 동학당 의병봉기에 참여했다. 1903년 삼일학교 설립, 1907년 수원지역 국채보상운동 주도, 1909년 신민회 경기도 책임자로 활동 후 독립군 양성학교인 ‘신흥무관학교’ 설립과 군자금 조달 등의 활동을 했다. 1980년 대통령표창,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으나 그간 조명되지 못해 왔었다.

이석휘 임면수 선생 기념사업 추진위원장은 "수원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면서도 주목 받지 못한 점이 안타까워 재조명을 이유로 추진된 사업"이라며 "120만 수원시민의 의지로 건립된 필동 선생의 동상 제막식인 만큼,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선경, ‘수원의 유관순’… 19세 나이에 순국

3․1운동의 대한독립만세를 생각하면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유관순 누나'를 떠올린다. 수원에도 18살이라는 나이에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비밀 독립활동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혀 갖은 옥고를 치르다 19살의 나이에 순국한 누나가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수원의 유관순‘인 이선경(李善卿·1902~1921)이다.

이선경은 수원공립보통학교(현 신풍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18년 서울의 숙명여학교에 입학, 1919년 3월 5일 서울 만세운동 시위에 참가했다가 구속돼 3월 20일 무죄로 풀려났다. 숙명여학교에서 퇴학 조치를 받은 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하였고, 임순남과 최문순 등과 함께 비밀 결사조직인 혈복단(血復團)을 구국민단(求國民團)으로 개칭하고 활동하였다. 구국민단은 경술국치에 반대해 독립 국가를 조직할 것과 독립운동을 하다가 수감돼 있는 사람의 가족을 구조할 것 등의 목표를 세우고, 매주 금요일 삼일학교에서 회합을 가졌다. 1920년 8월 일제에 의해 구국민단의 활동이 발각되어 박선태․임순남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결국 1921년 4월 12일 재판 끝에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고 8개월의 옥고를 겪은 뒤 풀려났으나 9일 만인 4월 21일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다. 2012년 순국이 인정되어 건국포장 애국장을 받아 독립유공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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