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위원 이보택

여주시 문화원 하계 문화유적지 답사 편에 안동시 병산(屛山)서원과 하회(河回)마을 그리고 유명한 안동탈춤 등을 관람했다. 안동은 양반고장으로 지역 성씨중 안동 김씨와 안동 권씨의 씨족 촌으로 알았는데 전국에 유명하게 알려진 하회마을은 류씨 집성촌으로 600년째 살고 있었다.

유적지답사는 회원들에게 얼마나 유익한가를 생각해보자. 그 지역의 이상을 실현시킨 정신 활동의 진, 선, 미를 돌아보는 문화유적지 답사라는데서 흥분이 되고 문화라면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률, 관습 등 우리가 살아가는 구성을 총체적으로 표현한 지역의 상징물이다.

여주를 출발한지 2시간만인 오전 10시 20분경 안동IC에 도착하여 이리도 빨리 올수 있나  하고 생각하니 그 옛날 80년대 초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안동까지를 하루를 소요해 간 것이 기억되는데 2시간 도착에 우리의 발전상에 놀랐고 필자가 칼럼으로 기고한 기고문을 생각해 봤다.

‘미꾸라지 진짜 용된 나라 대한민국’ 이라는 작은 책자는 한 사업가가 지난30여 년간 신문에 발표된 발전상을 스케치하여 모아온 우리나라 발전상을 발행한 책자에 감명을 받고 칼럼에  기고한 내용들을 상기해 보니 우리나라는 참으로 자랑스럽게 발전되어 온 것을 실감했다.

첫 번째 답사지는 오늘의 이순신 장군이 있기까지 뒤를 받쳐준 명상, 류성룡의 병산서원을 답사했다. 병산서원(사적 제260호)은 류성룡 선생이 1572년 풍악서당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 병산서원의 모체이며 1863년(철종 14년)에 병산(屛山)이라는 사액을 받은 서원이다. 

서원은 1550년 명종 때 이퇴계(李退溪)선생의 건의로 백운동서원을 소수서원(紹修書院)으로 액(額 간판)을 하사받으면서 전국적으로 서원은 늘어났고 거기다 조세까지 감면해주자 유생들이 향교보다 서원으로 몰려 특권적인 곳으로 군역(軍役)을 기피까지 하는 곳이 됐다.

따라서 서원은 계속 늘어나 유생들은 공부보다 붕당(朋黨)에 가담하여 서원을 근거로 양민을 토색하는 폐단까지 생기자 서원허가는 제안되고 서원이 조정에 중대한 두통거리가 되자 조정은 단속에 나섰다. 영조, 정조, 철종 때까지 서원 정비를 계속했으나 성과는 별로였다. 

계속되는 서원정비로 650개로 정비됐지만 그래도 문제는 지속되자 1864년 대원군(고종 1)이 섭정하면서 유명서원, 도산서원, 송악서원 그리고 여주의 강한사(대로사)와 안동 병산서원 등 조선 8도에서 47개서원만 남기고 모두 철폐하면서 여주에서도 3개서원이 철폐 됐다.

하지만 병산서원은 철폐령 속에서 살아남은 유명한 서원으로 현재 유네스코에 등재중이라는 서원 입구 진입도로가 일방통행지로 진입이 어려운데도 많은 관광버스와 관람객들이 찾고 있었다. 진입로의 산주가 서울사람이어서 동의가 늦어지고 있다며 곧 해결된다고 했다. 

두 번째 답사지는 열 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하회마을이다. 입구가 기념품상과 먹거리로 조성돼 보기가 돋보였고 명성황후 생가도 이렇게 조성했으면 하고 생각해 봤다. 하회마을은 풍산류씨가 600여년을 살아온 우리나라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라 하여 살펴봤다.

와가와 초가집들이 오랜 역사 속에도 잘 보전되어 오는 전통적 마을에 자동차와 농기구를 갖춘 촌락에 부호가의 집이 많은 이 마을에서 조선시대 대유학자 류운룡 선생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 형제가 자라난 마을이라는 데서도 유명한 마을로 전해져 오고 있다.

하회(河回)라는 마을 이름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데서 유래되고 조선시대 살기가 좋은 마을로 유래되는 이 마을은 화산의 줄기가 낮은 구릉지 끝에 수령 600년 된 삼신당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 마을의 중심부로 마을민들은 수호신으로 모신다. 

따라서 하회마을의 집들도 삼신당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어 좌향이 일정치가 않다. 우리나라 대부분 마을의 집들이 정남형 또는 동남형을 향해 짓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며 와가를 중심으로 초가들이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안동은 안동김씨, 권씨 등 지역성씨 집단 고장으로 알았는데 류씨만의 동성마을을 보고 지난 70년대 초 여주지청장이 한말이 생각난다. 한복에 긴 머리를 한 학가 처녀와 결혼하려고 신부 아버지를 찾아 청원했다 거절당했다며 김씨, 권씨 성씨의 세도가 대단한 고장이라고 했다.

안동 옆 청송이 고향인 그는 안동 김씨, 권씨 신부가 최고여서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다시 찾아가 청혼을 하니 집안내력을 자세히 묻고 승낙해줘 결혼했다며 청송, 의성 지방에서는 안동 김씨, 권씨 신부가 최고의 신부라고 하여 안동은 김씨, 권씨 만의 씨족 촌으로 알았다.   

그래서 하회마을도 안동 김씨, 권씨의 마을로 알았고 가옥들도 안동시가 씨족마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지어준 허울 좋은 가옥들로 알았는데 마을을 돌아보니 빈집은 없고 18세기에 류씨 선조들이 지어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오는 하동댁, 남촌댁으로 부호가들의 씨족 촌이었다.

마지막으로 공연보기가 힘들다는 안동국제 탈춤 공연을 이날 한다고 하여 하회마을을 다 돌아보지도 못하고 시간에 맞춰 탈춤공연장으로 향했다. 많은 관람객들이 운집하여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탈춤공연 30여분간의 공연까지 관람하여 유적지 답사는 보람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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