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아들’ 진짜 일낸다

2011 세계 대회서 우승할 당시의 정현. 초등학교 때 이미 주니어 3개 대회를 석권한 유망주였다. (연합뉴스 제공)

수원이 난리가 났다. 아니 경기도가,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세계가 글로벌 스타를 주목했다.

‘수원의 아들’ 정현은 24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8강전 테니스 샌드그렌(97위·미국)을 3-0(6-4 7-6<7-5> 6-3)으로 완파하고 한국 선수 최초로 메이저 대회 4강 신화를 썼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 정현의 경기 중계를 지켜본 수원시 공무원들은 “정현이 정말 대단하다”며 “수원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공무원들은 정현의 실력이 상대보다 월등하다며 이 기세라면 4강은 물론 결승까지 가서 우승도 노려볼만하다며 잔뜩 기대를 걸었다.

테니스 동호회에서 활동한다는 한 수원시민은 “정현의 테니스 4강 진출은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이후 가장 큰 스포츠 뉴스다”라며 “테니스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에서 이처럼 좋은 성적을 낸 정현 선수가 정말 위대하다”고 기뻐했다. 1996년생인 정현은 수원 영화초를 졸업하고 수원북중을 거쳐 수원 삼일공고를 졸업한 뒤 한국체육대에 재학 중이다.

정현의 모교인 수원 삼일공고와 수원북중에서는 기쁨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수원 삼일공고와 수원북중학교 테니스부 소속 학생 9명은 이날 동문 선배인 정현의 8강전을 응원하기 위해 오전 훈련을 잠시 멈추고 삼일공고 교장실을 찾았다. 후배들은 "정현 선배가 이길 것"이라며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하지만 정현이 3세트 5-2 상황에서 40-0으로 앞서가다가 듀스를 허용하며 위기를 맞자 후배들은 양손을 깍지 낀 채 눈을 질끈 감는 등 초조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테니스부 학생들과 함께 경기를 관람하던 김동수(53) 교장은 "가슴이 벌렁거려서 못 보겠다"라며 잠시 자리를 뜨기도 했다.

정현이 치열한 랠리 끝에 점수를 따내고 최종스코어 3-0으로 준결승 진출을 확정 짓자 후배들은 들고 있던 테니스 라켓을 허공에 휘두르고 손뼉을 치며 선배의 승리를 기뻐했다.

삼일공고 3학년 심용준(18) 군은 "그랜드슬램에서 한국인 최초로 준결승에 진출한 정현 선배가 멋지게 느껴지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라면서 "12년 동안 테니스를 했는데, 앞으로 더 열심히 연습해서 정현 선배처럼 세계 무대에서 활약해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수원북중 1학년 이건우(13) 군은 "3세트 때 위기가 많아서 불안했는데, 정현 선배가 상대편보다 한 수 위의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세트를 따낸 것 같다"라며 "선배의 기운을 이어받아 (나도)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가 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정현이 초등학생 때부터 테니스를 가르친 삼일공고 테니스부 이강훈(38) 코치는 "현이가 이렇게 좋은 성적을 거두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라며 "오늘 경기를 보니 정신적, 경기력 측면에서 이전보다 많이 성숙한 것 같다"라며 감격해 했다.

삼일공고는 준결승이 열리는 오는 26일 재학생과 졸업생들로부터 참여 신청을 받아 학교 강당에서 다시 한 번 '정현 응원전'을 펼칠 계획이다.

정현이 승승장구하기까지는 가족과 코치진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정현은 지난 22일 조코비치(14위·세르비아)를 꺾은 뒤 관중석 플레이어 박스를 향해 큰절을 해 화제가 됐다. 정현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저를 도와주시는 스폰서, 매니저, 팀, 가족이 모두 모여 있는 곳으로 절했다"며 "언젠가는 멋진 코트에서 승리하면 그런 걸 해보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20일 알렉산더 즈베레프(4위·독일)와 3회전 경기에서 이긴 뒤 기자회견에서는 "지금 멜버른에 함께 와 있는 팀은 몇 명인가"라는 질문에 "부모님과 형, 코치 2명이 함께 있다"고 답했다.

정현과 함께 호주에서 머물며 함께 응원하는 이들은 매 경기 정현의 플레이어 박스에 자리 잡고 앉아 기도하는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정현은 잘 알려진 대로 '테니스 가족'의 막내다. 아버지 정석진(52) 씨는 정현의 모교인 삼일공고 테니스부 감독을 지낸 경기인 출신이다.현역 시절 대한항공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지금은 중고테니스연맹 전무이사를 맡고 있다.

어머니 김영미(49) 씨는 두 아들을 모두 테니스 선수로 키워낸 '테니스 맘'이다. 그의 형 정홍(25)은 실업 현대해상에서 테니스 선수로 활약 중이며 29일 국군체육부대 입대를 앞두고 있다.

김남훈 현대해상 감독은 "(정)홍이가 입대 전에 동생 경기를 직접 보면서 응원하고 싶다고 해서 호주까지 갔다"며 "귀국해서 거의 바로 입대해야 하는데도 동생을 위하는 마음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결승전은 28일이라 만일 정현이 결승까지 진출하면 정홍은 결승전은 보지 못하고 귀국길에 올라야 하는 셈이다.

정홍은 현재 세계 랭킹 629위로 정현과 차이가 크게 나지만 한국 선수 중에서는 여섯 번째다.

정홍은 국가대표로도 활약한 경력이 있다. 정현의 지도는 이달 초부터 새로 영입한 네빌 고드윈(43·남아공)과 손승리(43) 코치가 맡고 있다. 고드윈 코치는 지난해 US오픈 준우승을 차지한 케빈 앤더슨(12위·남아공)을 가르쳤으며 2017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올해의 코치상을 받았다. 고드윈 코치와는 호주오픈까지 함께 한 뒤 계약 연장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손승리 코치는 울산공고와 울산대, 현대해상 등에서 선수로 활약한 경력이 있으며 현재 대한테니스협회 국가대표 후보 선수 전임지도자로 일하고 있다.

조코비치를 물리친 이후 중계 카메라에 '캡틴, 보고 있나'라는 글을 써 화제가 됐던 김일순 전 삼성증권 감독도 정현의 성장에 빼놓을 수 없는 지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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