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에 정현 소개… "결승까지 가길"

지난해 정현이 세계 남자프로테니스(ATP) 대회에서 우승하자 모교인 수원 삼일공업고등학교 정문 옆에 축하 플래카드가 걸렸다. 23일 한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8강 진출했다고 플래카드 걸기는 이릅니다. 결승까지 가길 바라는 마음에 플래카드 제작을 미루고 있습니다."

23일 '수원의 아들' 정현(23)이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8강에 진출하자 그의 모교인 삼일공업고등학교도 '월드클래스 선수' 배출에 한껏 들뜬 모습이다. 

정현은 초·중·고교를 모두 수원에서 나왔다.

겨울방학이라 조용했던 삼일공고 교무실에는 이날 전화벨 소리가 종일 울려댔다. 당직근무를 나온 교사들은 재학생과 졸업생은 물론 각지에서 걸려오는 축하전화를 받느라 바빴다.

삼일공고 김동수 교장은 "정현이가 8강에 진출하고 나서 학생들은 물론 오래전에 졸업한 분들까지 하나같이 기쁜 마음으로 축하전화를 주시고 있다"라면서 "선생님들 사이에서 '(8강 진출) 플래카드를 걸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정현이 더 좋은 성적을 거두길 바라는 마음에서 다음 경기를 지켜본 뒤 플래카드를 제작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8강 진출을 축하하는 플래카드는 내걸리지 않았지만, 학교 홈페이지에는 이미 정현 선수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걸려있다.

지난해 11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 넥스트 제너레이션 파이널스 정상에 오른 정현의 언론 보도를 학교소식 메인으로 게시하며,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한 졸업생에 대한 자랑스러운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정현은 아버지 정석진씨와 테니스 실업 선수로 활약 중인 형 정홍(25)을 따라 2012년 삼일공고에 진학했다.

수원에 테니스부가 있는 학교가 드물기도 했지만, 삼일공고 테니스부 출신인 아버지 정석진씨가 1998년부터 이 학교 체육 교사 겸 테니스부 감독을 맡게 되면서 삼부자는 자연스럽게 '테니스 동문'이 됐다.

어릴 때부터 고도근시와 난시로 고생한 정현이 시력 교정을 위해 초록색을 많이 볼 수 있는 테니스를 시작한 사연은 이미 잘 알려졌다.
정현은 학생 때도 승리욕이 굉장히 강했으며, 상대방의 경기 흐름을 읽어낼 줄 아는 똑똑한 경기력을 보여줬다고 한다.

김동수 교장은 "언젠가 한번은 경기에서 심판이 석연치 않은 판정을 하자 현이가 화를 참지 못하고 라켓을 집어 던져 아버지에게 혼난 적이 있다"라면서 "평소에는 순하던 아이가 코트에만 들어가면 눈빛이 바뀌고 경기를 주도해내는 능력을 보면서 '될성부른 떡잎'이라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현이 고등학생 1~2학년 때 체육수업을 담당한 교사 이민규씨는 "현이는 슬럼프를 겪으면서도 겉으로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속으로 삭이는 등 조절을 잘했는데,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정신력도 많이 향상된 것 같다"라며 "최근 경기에서 보여준 포핸드와 패싱샷은 어설프게 하면 오히려 역공당할 수 있는 기술로 웬만한 정신력이 아니면 선보이기 힘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현이 세계 정상급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정석진씨의 희생도 한몫했다고 모교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정현은 고3 때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 난 이후 출전한 대부분의 경기에서 예선 탈락했다.

아들의 부진한 성적에 20년 가까이 삼일공고에서 교직 생활을 한 아버지 정석진씨도 딜레마에 빠졌다.

주변에서는 정씨에게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있을 때가 아니다. 아들을 세계적인 선수로 키우려면 올인하라"며 끊임없이 조언했다.

김동수 교장도 정씨의 이런 고민에 "정현이가 앞으로는 10년 이상 국제무대에서 뛰게 될 텐데, 제대로 성장시키려면 옆에는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인 아버지가 옆에 있어 줘야 한다"라고 충고했다.

정씨는 결국 아들을 위해 2016년 19년 교직 생활을 그만뒀다.

김 교장은 "정 감독이 아들의 커리어 때문에 교직을 그만두는 결정을 하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이번 호주 경기에서 가족 이 있는 관중석을 향해 큰절한 정현의 행동도 어쩌면 자신을 위해 희생한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올해 테니스 선수를 모집하려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운동이 워낙 힘들다 보니 스카우트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면서 "'정현 효과'를 기대하며 침체한 우리나라 테니스계가 활성화됐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정현의 또 다른 모교 수원북중학교 관계자는 "정현의 학창시절 선생님들이 모두 다른 곳으로 전근 가면서 그의 학창시절을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교사는 없지만, 후배들과 교직원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매 경기 응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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