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8월 정체 불명의 이양선(異樣船) 1척이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올라온다. 아시아 팽창주의 정책을 추진한 미국 상선인 제너럴셔먼호였다.

셔먼호는 원래 미국인 프레스턴(Preston,W.B)의 선박으로 중국 톈진(天津)에 기항 중이었다, 그곳에 주재하던 영국 메도즈상사(Meadows and Company)와 용선 계약을 체결해 계약기간 중 셔먼호는 영국 상사에 위탁되어 있었다. 셔먼호는 80톤급 증기선으로 대포 2문을 갖추고 있었으며 선원들도 완전 무장 상태였다.

메도즈상사는 셔먼호에 조선과 교역할 상품을 싣고, 영국인 개신교 선교사 토머스(Thomas,R.J., 崔蘭軒)를 통역관으로 채용한 뒤 8월 9일 즈푸(芝芣)를 출항, 조선으로 출발하게 하였다.

셔먼호의 승무원은 선주 프레스턴, 선장 페이지(Page), 항해사 윌슨(Wilson) 등 미국인 3명, 통역 담당 토머스, 화물 관리인 호가스(Hogarth) 등 영국인 2명, 그리고 기타 중국인과 말레이시아인 19명으로 총 24명이었다.

셔먼호 승조원의 주역은 토머스였다. 토머스는 셔먼호를 타기 전에 이미 조선 포교의 꿈을 가지고 조선 해역을 두 차례 방문한 일이 있었다. 조선이야말로 선교의 최적지임을 확신하고 다시 조선으로 들어갈 날을 학수고대하던 끝에 때마침 셔먼호 통역으로 채용되어 대망의 조선행 꿈을 실천에 옮겼다.

셔먼호는 백령도 일대를 거쳐, 대동강 하구의 급수문(急水門)을 지나 거침없이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셔먼호의 승조원들은 프랑스 신부를 학살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 함대가 쳐들어올 것이라고 위협하면서 통상과 교역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조선 관리는 통상·교역은 조선의 국법에 절대 금지되어 있으며, 외국선의 내강 항행(內江航行)은 국법에 어긋난 영토 침략·주권 침해 행위라고 지적, 대동강으로 오지 말라고 강력히 만류했다.

셔먼호는 항행을 강행, 드디어 평양 만경대(萬景臺)까지 올라왔다. 조선은 셔먼호의 무법 행위에도 불구하고, 낯선 사람을 잘 대접한다는 유원지의(柔遠之義)에 따라 세 차례나 음식물을 후하게 공급하는 등,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셔먼호는 장마비로 불어난 강물을 타고 평양까지 올라왔으나 장마비가 그치자 갑자기 수량이 줄어들어 운항이 어렵게 되었다. 이에 셔먼호 승조원들은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조선 군사 중군 이현익(李玄益)을 납치하는 등 난폭한 행위를 자행했다. 화가 난 평양 군민과 충돌이 벌어졌다. 셔먼호의 대포에 맞아 조선 군민 중에 사상자가 발생하자 평양감사 박규수(朴珪壽)가 화공으로 셔먼호 불태우고 선원들은 몰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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