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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천(酒泉) 술바위옹달샘의 물을 마셔 본 노인은 물이 아니라 술이라 깜짝 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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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1.1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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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술샘이 발견하였지만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마르고 말았다는 모티프는 강원도 영월군의 주천(酒泉) 전설을 비롯해서 충청북도 단양군의 원통암지, 경상북도 문경시의 주천 마을 등 전국에 퍼져 있다. '술로 가득 찬 술샘'도 인간의 과도한 욕심을 경계하는 지명 유래담이라고 할 수 있다.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시장리 보무래에서 서북구 성거읍 오색당리로 가는 지름길에는 수리 고개가 있다. 옛날 솔방울로 담근 솔술과 나무뿌리로 목근주를 만들어 수리 고개를 넘어 다니며 장사하는 노인이 있었다. 노인이 담근 솔술을 먹고 병을 고친 사람들은 많았으나 정작 노인의 살림은 넉넉하지 않았다.

하루는 노인이 솔술을 한 짐 지고 장에 갔으나 해가 저물도록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노인은 하는 수 없이 술을 짊어 메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진절머리 고개를 오르기 시작하였다. 술을 다시 지고 돌아오는 일은 처음인지라 절로 한탄과 원망이 새나왔다.
고개를 힘겹게 올라오느라 목이 타자 노인은 근처에 있는 옹달샘을 찾아가 물을 떠마셨다. 

처음으로 그 옹달샘의 물을 마셔 본 노인은 깜짝 놀랐다. 샘물은 그냥 물이 아니라 술이었기 때문이다. 노인은 다음 날부터 샘물을 시장에 가져가서 물술이라며 팔았다. 

술맛이 좋다며 너도나도 사는 바람에 노인은 큰돈을 벌었다. 그러자 노인은 하루에 한 번씩만 술을 팔기로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쏟아지자 노인은 빗물이 들어가면 술이 변할까 봐 샘에 뚜껑을 덮어 놓았다. 비가 개자 뚜껑을 열어 본 노인은 깜짝 놀랐다. 비가 억수같이 퍼부어서 냇물이 넘칠 지경이었는데 샘에는 물 한 방울이 없었다. 아무리 샘을 파도 모래만 나올 뿐 그 뒤로 술은 영영 샘솟지 않았다.

한편 우리 고을 담 밖 관혁동(貫革洞 - 지금의 예천읍 노상리)에 주천(酒泉)이란 샘이 있었다. 이 샘은 물맛이 달 뿐 아니라,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철엔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울산지방의 왜군을 토벌하기 위해 우리 고을을 지나던 양호(楊鎬)라고 하는 명(明) 나라 장수가 이 샘의 물을 마셔 보고 감탄한 나머지 “과연 예천(醴泉 - 中國에도 있는 지명)의 이름처럼 물맛이 좋다”고 하면서 “예천의 지명은 이 샘 때문에 얻게 되었구나“라고극찬하였다. 

또 이 샘 때문에 통일신라 때 예천(醴泉)이라는 행정이름이 생겼다는 설(說)과 그렇지 않다는 설(說)이 엇갈리고 있으나, 참고 문헌이나 구전(口傳) 등으로 미루어 보아 이 샘(속칭 군방골) 설이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군방골샘은 깊이가 8m나 되며 지하에서 용출(湧出)하는 자연수로 이름만큼이나 달고 차서 지역민들에게 원동력을 제공하는 감로수(甘露水)였고, 또한 한(恨)과 애환(哀歎)을 함께 한 현장이었다.

군방골이란 조선 중기까지 관아(官衙)와 활을 만들던 궁방(弓房)이 모여 있었으며, 일설에는 동헌(東軒)을 지키던 군방(軍房)이 있던 곳이라 하여 군방골샘 또는 궁방골샘이라 구전(口傳)되고 있다.

근년에 생활환경이 개선되고 상수도(上水道)가 보급됨에 따라 폐정(廢井)하였던 것을 이 우물에 대한 주민들의 애정(愛情)과 우리 고을의 지명 유래와 얽힌 유서(由緖) 깊은 샘이기에 1990년에 목조와가(木造瓦家) 사각(四角)지붕의 보호각을 세우고 샘(酒泉)을 복원(復元)하여 보존 관리하고 있다.

또한 증평읍 장내마을에서 서장리로 가는 동리 어귀에 산이 있는데 그 모양이 옥녀가 틀에 앉아 있는 형상이라하여 옥녀봉이라 하였다.

지금부터 500여년 전 그 산 밑에 바위가 있어 그 바위에서 술이 흘렀으니 오가는 길손의 목을 적셔주는 노주였는데 이상하게도 어느 누구든지 꼭 한 잔의 술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루는 이 동리에 들어온 한 노승이 이 곳에 당도하여 몹시 갈증을 느껴 바위에서 솟는 물을 마시고는 더 이상 술이 나오지 않자 가지고온 지팡이로 그 술바위를 때렸더니 그 후부터 술바위에서 더 이상 술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위 술샘전설은 술샘의 물맛이 술맛과 비슷하고 수질이 불규칙한 데에서 발단된 것으로 보인다.

술샘이라는 지명에서 술샘전설이 형성되고, 전승력이 강화되고, 전승권이 확장되고, 전설의 내용이 변이된 등의 여러 측면들은 술샘의 장소성과 문화경관의 영향이 가해진 결과이다. 여기에는 ‘교통의 요충’쉬기에 좋은 곳’이라는 일반적인 측면 외에 지배층 중심의 문화경관성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는 곧 위 전설의 내용에 대한 영향으로 이어졌다. 술샘전설의 초기유형은 술샘바위 일부가 저절로 깨어진 사실에서 형성되었다.
 
깨어진 바위를 관원들이 다시 깨뜨린 사실이 있었고, 이 사실을 상민들의 관점에서 해석하다보니 마치 관원들이 술샘바위를 독점하고자 가져가려 한 것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일간경기  ilgang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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