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전후 독일이 보여준 과거사 해법 채택 가능성을 일축했다. 독일과 일본이 처한 주변환경이 다르다는 상황논리를 들었다. 유럽순방길에 오른 아베 총리는 첫방문국인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에 실린 회견에서 "전쟁 책임을 다루는 문제에서 일본이 독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는 질문에 대해 과거사 극복을 위해 독일이 걸어온 길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우경화 행보, 주변국과의 마찰 등 아베 노선의 문제점에 대한 국제적 비판여론을 감안한 질문에 독일과 일본은 다르니 압박하지말라는 식의 공세적 역사인식을 직설적으로 내보인 것이다. 과거사 해법은 단순한 배상문제가 아니라 인권과 인류보편적 근본가치를 훼손한 전쟁범죄행위에 대한 진솔한 반성과 사과문제와 직결돼있다. 이를 외면하는 아베의 인식은 군위안부 문제 등 한일관계의 경색이 풀리지않고 있는 원인을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아베총리는 이 인터뷰에서 2차대전후 독일이 처했던 주변환경에 대해 "유럽에서는 유럽 통합이라는 커다란 목표를 향한 공통의 노력이 있었다. 따라서 공동체 창설과 더불어 화해가 요구됐다"면서 그러나 일본이 처했던 아시아에서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고 강변했다. 그는 "일본은 비록 독일과는 다른 형태이지만 주변 국가들과 타협해 평화협정을 맺고, 그에 따라 배상 문제에 관한 진실한 기준을 세웠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본은 전후 부유하지 않은 아시아 국가들을 개발협력 형태로 지원했다"고 강조했다. 아베의 이런 인식은 과거사 갈등이 채권채무같은 정산의 문제가 아니라 침해되고 훼손된 인류 보편적 가치의 복원과 상처치유라는 근본문제와 맞닿아있다는 점을 외면하는 것이다. 독일이 전후 보여준 노선은 기계적, 법적인 전쟁책임 정산행보가 아니다. 일본과 같은 패전국이었지만 독일은 대학살 등 전쟁범죄 행위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전범 추적, 거듭된 속죄조치 등 과거사를 회피하지않고 정면으로 풀어왔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만 해도 지난 2009년 6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를 직접 안내했고, 작년 8월에는 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뮌헨 근처 다하우 나치 강제수용소 추모관을 공식방문했다. 2차대전 당시 당시 유대인과 집시 등 20만여명을 강제 수용했고 4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던 이곳에서 메르켈 총리는 "수감자들의 운명을 떠올리며 깊은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독일인 대부분이 당시 대학살에 눈을 감았고 나치 희생자들을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자책했다. 전범자들에 국한하지않고 일반 독일국민에게까지 확산된 진솔한 자기반성과 자책감을 보여준다.'

이런 독일의 전후 화해행보에 대해 어이없는 상황논리를 꺼내든 아베 총리는 최소한의 부끄러움조차 내던진 듯 보인다. 독일과 비교하면 아베의 동선은 정반대라 할 정도로 대조적이다. 작년 연말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전쟁의 참화로 고통당하지 않는 시대를 만든다는 맹세 전달을 위해 오늘을 택했다"고 강변하는가 하면, 교과서까지 왜곡하면서 후세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주고, 헌법해석을 바꿔가며 군사대국화의 길을 노골적으로 걷는 등 주변국과 마찰을 심화시키고 있다. 독일과 일본의 이런 상반된 행보는 양국이 처한 환경이 달라서가 아니라 과거사를 대하는 인식의 질적 격차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베는 이번 유럽순방길에서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개편을 통한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는데도 주력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좋은 이웃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양식있는 이웃이라도 되기를 기대하는 주변국들의 마음조차 얻지못하고 있는 일본이 유엔 지도국 자리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 문제 해법이 더욱 복잡해지는 양상이어서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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