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려 했다. 이미 1627년 정묘호란때 한 차례 강화도로 피신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청이 알고 강화도로 가는 길을 봉쇄했다. 강화도에는 김상헌의 형인 김상용이 있었다. 당시 원로대신이었던 김상용은 종묘사직 신주와 빈궁, 원손들을 데리고 미리 강화도로 피신했다. 그러나 청 군대가 공격한지 하루만에 1637년 1월 강화도가 함락된다. 77세인 김상용은 자결을 결심한다. 강화도 남문에 있는 화약고에서 13세 손자를 끝어안고 함께 순사했다. 김상용은 죽기 전 동생 김상헌에게 인조가 강화도로 오지 못하고 남한산성을 갔다는 글을 하인을 통해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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