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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령과 은행나무강화로 유배되어 평민으로 살다가 임금이된 철종의 '슬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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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0.1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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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에는 수령이 5백 년이 넘는 두 그루의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다. 

한 나무는 노승나무,또 한 나무는 동승나무로, 암컷- 수컷으로 불리기도 한다. 은행나무는 암컷과 수컷이 서로 마주보고 있어야 열매를 맺는데 전등사 은행나무는 꽃은 피어도 열매가 맺지 않는 신기한 나무들에 대한 전설이 있다.

강화도령 철종 임금 때의 일이다.

조정에서는 전등사에 은행을 스무 가마나 바치라고 요구한다. 전등사 은행나무는 기껏해야 열 가마밖에 열매를 맺지 않는데 스무 가마를 요구하니 관리들의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같은 요구를 듣게 된 동승이 노스님께 고했다.“스님! 정말 관가에서 너무들 하는 것 아닙니까요?”

“허허,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얘야,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미워해선 안 되느니라. 참아야 하느니….”노스님은 이렇게 타일렀지만 자신도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은행 스무 가마를 내놓을 수도 없었고 관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더욱 더 불교를 탄압할 것이 분명했다.

노스님은 하는 수 없이 백련사에 있는 추송 스님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추송 스님은 도력이 높기로 소문이 난 분이었다. 며칠 후 추송 스님이 전등사로 오셨다.

전등사 일대에‘전등사 은행나무에서 은행이 두 배나 더 열리게 하는 기도가 있을 것’ 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추송 스님의 3일 기도를 지켜보았다. 그 중에는 관리들도 섞여있었다.

“어떻게 은행이 두 배나 많이 열린단 말인가?”

“맞아! 추송 스님이 제 아무리 정성을 드려도 소용없는 짓이겠지.”사람들은 저마다 이렇게 수군거렸다.이윽고 기도가 끝나는 날이었다.
갑자기 추송 스님의 기도를 지켜보던 관리들의 눈이 얻어맞은 것처럼 퉁퉁 부어버렸다.

“이제 두 그루의 나무에서는 더 이상 은행이 열리지 않을 것이오. 추송 스님이 기도를 끝내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로 그때 때 아닌 먹구름이 전등사를 뒤덮더니 폭우가 무섭게 내렸다.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모두 땅에 엎드렸다.얼마 후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을 땐 추송 스님과 노스님, 동자승까지 모두 어디론지 사라졌다.

사람들은 보살이 전등사를 구하기 위해 3명의 스님으로 변해 왔다고 믿게 되었다. 그 때부터 전등사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왕자들의 권력 다툼속에 강화로 유배되어 평민으로 살다가  임금이된 철종의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이야기.

사도세자의 서자 은언군의 서손이자 전계대원군 이광의 셋째 아들이다. 한성부에서 태어났으나 은언군과 상계군 사건과 이복 형 원경의 옥사로 교동도와 강화도로 유배지가 옮겨진 뒤 왕족으로서의 예우를 박탈당하고 평민처럼 생활하였다. 

그 뒤 농업과 나무꾼, 행상으로 살던 중 순원왕후의 명으로 덕완군에 봉해진 뒤 순조의 양자 자격으로 왕위를 이었다.
강화도에서 농민과 행상으로 살던 그는 양순이라는 천민 처녀를 만나게 된다. 

시골도령으로 자라다가 얼떨결에 왕위에 오른 철종은 강화에서 살 때 양순과 언약을 맺은 사이였다. 하지만 천민은 궁녀조차 될 수 없는 엄격한 규범 때문에 양순을 궁궐로 데리고 갈 수 없게되었다.

양순을 잊지 못한 철종은 상사병을 앓는다. 그러자 왕가의 사람들은 양순을 은밀하게 제거해버린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철종은 비탄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다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서출인데다가 강화도에서 나뭇꾼으로 있다가 왕이 되었다 하여 그의 재위기간 중 사대부가에서는 그를 강화도령이라 조롱하였고 이는 곧 그의 별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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