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풍경에 취해버린 나 홀로 도보여행객들은 즐겁다

제주도 본섬 동쪽 바다에 우도가 떠 있다. 우도는 이중섭의 그림에 나오는 우직한 소를 닮은 듯한 형상의 섬이다. 몇 만 년 동안 물 위에 떠 있는 소의 잠을 깨워보려는 마음을 싣고 성산항을 출발, 우도로 향한다. 

성산포항을 출발한 지 15분쯤 흘렀을까, 우도에 다다르자 여행객들을 가장 먼저 반겨 주는 건 좁은 골목 사이로 집집마다 내걸린 태극기다. 항구 한 켠에는 스쿠터, ATV, 전동카 등 다양한 ‘탈것’들이 우도 일주를 ‘돕겠다는 정신’으로 도열해 있다.

우도에는 자유분방함이 넘쳐난다. 파란 잔디밭을 가로지르며 우도봉을 오르는 성급한 순례자, 스쿠터를 타고 해변도로를 신나게 달려가는 연인들, 전동카에 몸을 싣고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는 가족들, 길 위에서 바다 풍경에 취해버려 사색에 빠진 나 홀로 도보여행객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우도를 즐긴다.

서빈백사의 신비스런 하얀 모래사장은 자연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우도와 성산포사이에 서식하는 홍조류가 광합성을 하고 나면 찌꺼기가 남는다. 그 찌꺼기들이 이처럼 아름다운 홍조단괴를 형성한다니 우리들은 늘상 자연에 빚을 지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해안길 한 켠에서 우뭇가사리를 널고 있는 나이 든 해녀가 보인다. 등이 굽은 그 해녀의 묵묵한 손길은 오늘도 햇살에 검게 타고 있다. 가까운 바다에서는 쉬익쉬익 숨비소리가 간간이 들려오기도 한다. 까만 잠수복을 입고 수중 발레를 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부지런한 잠녀들의 억척스런 물질이다.

주홍색 태왁에 의지한 그들의 물질에 시선을 주면서 천천히 걷다보면 발걸음은 돈짓당에 닿는다. 돈짓당은 ‘바다를 다스리는 신령을 모시는 마을 수호신’으로 그들의 무사안녕, 풍어를 기원하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2월에 영등제, 7월에 백중제, 8월에 용왕제의 당제를 봉행했으나 지금은 상시의례를 지낸다고 한다. 돈짓당 안에는 의례를 지낸 흔적도 보인다.

답다니탑에 이르면 그 허름해진 모습에서 세월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답다니탑은 연대와 흡사하게 생겼다. 하지만 연대가 관찰과 신호를 했다면 답다니탑은 관찰만 했던 곳이다. 답다니탑과 망대는 제주도의 근대사에서 잊을 수 없는 1948년 4·3사건 때 쌓여진 것이다. 가슴 아픈 역사의 소용돌이가 탑돌에 채색되어 있는 듯하다.

슬픈 역사의 한 장면을 훨훨 해풍에 날려보내자 파도소리를 타고 풋풋한 이야기가 실려온다.

삼양동 해녀탈의장에서 만나는 영화 '인어공주'의 영상이다. 딸들은 왜 엄마에게도 아름다운 청춘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일까? 엄마의 답답한 삶을 갑갑해하던 딸. 젊은 날 엄마의 꿈과 사랑이 우편배달부의 자전거 바퀴처럼 빠르게 스쳐갔던 영화였다.

아련한 영상을 뒤로하고 길을 나섰다. 그리고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육지로 올라와 젖은 몸을 말리던 불덕을 만났다. 불덕은 ‘불을 피우는 자리’라는 제주 방언이다. 이중돌담으로 쌓여진 불덕 안에서 불을 피워 몸을 말려가며 고단한 삶을 달래기 위해 노래도 불렀을 것이다. 흥얼거리는 노랫가락이 메아리처럼 들려올 것 같은데 이제는 불덕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현대식 탈의장들이 들어서고 있어 한편으로는 아쉽다.

우도가 결코 살기가 만만치 않았다는 사실은 곳곳에 자리한 방사탑에서도 엿볼 수 있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기운이 허한곳이나 불길한 징조가 보이는 방 위에 탑을 세워 그 기운을 몰아내고자 했던 것이 바로 방사탑이다. 하고수동의 방사탑에서는 지금도 수호신들의 주문이 흘러나오는 것 같다.

우도의 제1경은 주간명월(晝間明月)로, 한낮에 굴 속에서 달을 본다는 뜻이다. 섬 남쪽 어귀의 '광대코지[岬]'로 불리는 암벽 주위에 여러 개의 해식동굴이 있는데, 맑고 바람이 잔잔한 날이면 한낮의 태양이 수면에 반사되면서 동굴 천정에 비쳐 마치 둥근 달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제2경은 야항어범(夜航漁帆)으로, 밤 고깃배의 풍경을 일컫는다. 6~7월이 되면 섬 전 지역에서 집어등을 켠 채 조업을 하는 수많은 멸치잡이 어선들의 휘황찬란한 광경을 볼 수 있다. 특히 섬 북동쪽 모래톱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압권이다. 

제3경은 천진관산(天津觀山)으로, 동천진동에서 한라산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우도의 관문에 해당하는 동천진동에서는 성산 일출봉과 수산봉(水山峰)·지미봉(地尾峰)을 비롯해 각종 기생화산을 품고 있는 한라산의 빼어난 절경을 볼 수 있다.

제4경은 지두청사(指頭靑沙)로, 지두의 푸른 모래를 뜻한다. 등대가 있는 우두봉 꼭대기에서 바라본 우도 전경과 맑고 푸른 바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눈부시게 빛나는 백사장의 풍경을 통틀어 일컫는다. 

제5경은 전포망도(前浦望島)로, 우도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구좌읍 종달리(終達里)와 하도리(下道里) 사이의 앞바다에서 본 우도의 모습이다.

제6경은 후해석벽(後海石壁)으로, 바다를 등지고 솟아 있는 바위 절벽을 뜻한다. 동천진동 포구에서 바라본 동쪽의 웅혼한 수직절벽인 '광대코지'를 일컫는다.

제7경은 동안경굴(東岸鯨窟)로, 동쪽 해안의 고래굴이라는 뜻이다. 우도봉 뒷마을의 '검멀레' 해변에 '콧구멍'이라는 2개의 해식동굴이 있는데, 예전에 거인고래가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제8경은 서빈백사(西濱白沙)로, 서쪽의 흰 모래톱이라는 뜻이다. 섬 서쪽에는 산호 백사장이 하얀 빛으로 반짝이는데, 이 곳에서 바라보는 지미봉의 경치.

또한 우도에는 유명한 민박집이 있다.

그 곳의 이름은 '백악관' 수동해수욕장옆의 이름처럼 하얀 외벽이 도드라지는 이 곳은 검은 현무암과 하얀 건물이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객실도 많고 샤워시설이 잘 되있고 주인장도 친절해 이용객들에게 좋은 점수를 받고 있다. 백악관의 백미는 일출로 이른 아침 바다에서 솟아나는 둥근 해는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을 정도의 장관을 연출한다.

이 집이 우도의 명물이 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으니, 바로 이 곳이 '아들 낳는 민박집'이라는 것.

이미 VJ특공대 등 유명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것도 여러번으로, 전국으로 전파를 탄 이후 많은 신혼부부들과 늦둥이를 원하는 중년 커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백악관 주인장은 이 곳이 '아들 낳는 명소'가 된 이유를 다 일출에 돌린다.

주인장의 말로는 해의 정기를 남자가 받게되기 때문에 해뜰 때 동침하면 아들을 가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믿거나 말거나 겠지만 이곳에 들른 후 아들을 가졌다는 커플들도 실제 여럿이라하고, 지금도 아들을 원하는 많은 커플들이 이 집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데 이 집 주인장은 아들 없이 딸만 셋이라고 한다. '아들 낳는 민박집'의 전설이 사실인지는 증명할 길이 없으니 알아서들 판단할수 밖에....

어쨌든 분명한 건 우도 '백악관'은 앞으로도 많은 커플들이 아침을 계속 맞이 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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